“메뉴에 맞춘 ‘족집게 젓가락’ 어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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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디자이너 정미선씨

젓가락 디자이너 정미선 씨가 끝이 갈라져 국수를 먹기에 좋은 젓가락과 음양 젓가락을 들어 보였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젓가락 디자이너 정미선 씨가 끝이 갈라져 국수를 먹기에 좋은 젓가락과 음양 젓가락을 들어 보였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백화점 사장 현빈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젓가락 디자이너 정미선 씨(35)는 끼니마다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젓가락의 디자인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변화했는데 왜 젓가락은 그대로인 거죠? 음식의 종류가 다양한데 젓가락은 왜 한 종류만 쓰나요? 서양인들이 메뉴에 따라 나이프와 포크를 바꿔 쓰듯 우리도 가벼운 채소를 먹을 때와 두툼한 고기를 먹을 때 젓가락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입에 닿는 젓가락 끝부분의 모양은 집어 먹는 음식의 종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끝이 갈라진 젓가락은 면이 걸려 흘러내리지 않아 국수를 먹기에 좋다. 디자이너 정미선 씨는 이 젓가락으로 특허를 받았다. 정미선 씨 제공
입에 닿는 젓가락 끝부분의 모양은 집어 먹는 음식의 종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끝이 갈라진 젓가락은 면이 걸려 흘러내리지 않아 국수를 먹기에 좋다. 디자이너 정미선 씨는 이 젓가락으로 특허를 받았다. 정미선 씨 제공
그가 디자인하는 건 예쁜 젓가락이 아니다. 음식을 잘 집어 먹을 수 있는 최적의 모양이다. 지금까지 만든 젓가락은 약 200종. 이 중 끝 부분이 뱀의 혀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면류를 먹기에 좋은 젓가락은 특허를 받았다. 젓가락 관련 디자인의장도 10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일본의 명문 무사시노대 공예공업디자인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젓가락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공교롭게도 그와 일본인 지도교수 모두 젓가락질을 잘 못한다. 젓가락질이 서툴다 보니 그 기능에도 의문을 품게 된 걸까.

“교수님, 일본 사람들은 왜 나무젓가락을 쓰는 거죠?”

“한국인들은 쇠로 어떻게 젓가락질을 하지요? 젓가락에 대해 박사논문을 써 보는 건 어때요?”

저(箸) 문화를 연구하려면 고대 중국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는 한중일 3국의 젓가락 문화를 비교 연구하고 메뉴에 맞는 젓가락 디자인을 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대학의 한국인 박사 1호다.

젓가락은 3세기 중국에서 쓰기 시작해 4세기에 한국에, 6세기 중반엔 일본에 전파됐다. 젓가락 끝부분의 모양은 음식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길이는 음식과 사람의 거리에 영향을 받는다.

중국 음식은 기름지고 뜨거우며 뼈를 발라낼 일이 없다. 음식과 사람의 거리가 먼 편이다. 그래서 미끄러지지 않고 뜨거운 김에 데지 않도록 플라스틱에 길이가 길고 퉁퉁하며 끝이 뭉툭한 원형 젓가락을 쓴다. 일본 젓가락은 끝부분이 뾰족하다. 생선 가시를 발라 먹을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밥그릇을 들고 먹기 때문에 길이는 짧은 편이다. 습한 환경이어서 예부터 녹슬 우려가 없는 나무젓가락을 사용해 왔다. 한국은 김밥 고기 전의 무게를 견디어내야 하기 때문에 끝이 네모난 금속제 젓가락을 쓴다.

깨끗한 젓가락(위쪽). 젓가락 굵기에 변화를 주어 입에 들어가는 젓가락 끝부분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음양 젓가락(가운데). 한 짝은 볼록하게, 한 짝은 오목하게 디자인해 음식을 집을 때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두부용 젓가락(아래쪽). 젓가락 안쪽 가닥이 음식물에 큰 힘이 전달되지 않도록 살며시 잡아줘 두부나 묵을 집어도 으깨지거나 미끄러지지 않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깨끗한 젓가락(위쪽). 젓가락 굵기에 변화를 주어 입에 들어가는 젓가락 끝부분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음양 젓가락(가운데). 한 짝은 볼록하게, 한 짝은 오목하게 디자인해 음식을 집을 때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두부용 젓가락(아래쪽). 젓가락 안쪽 가닥이 음식물에 큰 힘이 전달되지 않도록 살며시 잡아줘 두부나 묵을 집어도 으깨지거나 미끄러지지 않는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정 디자이너는 음식 문화에 따라 저의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현대 메뉴에 맞는 최적의 디자인을 찾기 시작했다. 다양한 젓가락을 디자인해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아 축적해 놓은 데이터가 요즘 젓가락을 디자인할 때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젓가락 끝부분의 굵기를 보면 2mm는 정확성, 3mm는 균형성, 4mm는 안정성을 요구하는 음식에 적당한 굵기다. 음식물의 무게와 두께, 단단한 정도에 따라 끝부분의 모양과 길이, 재질은 모두 달라진다.

“젓가락 하나로 모든 종류의 음식을 집어야 하기 때문에 손재주와 지능이 발달했는지 모릅니다. 도구가 진화하지 않으니 사람이 진화한 거죠. 그래서 제가 만든 젓가락을 보여주면 한국 사람들은 ‘신기하다’고만 하는데 젓가락질이 서툰 외국인들은 ‘이런 게 정말 필요하다’고 해요.”

그는 젓가락이 마케팅 도구도 될 수 있다고 본다. “제가 디자인한 젓가락이 나오는 국수 전문점을 차리고 싶어요. 먹고 나면 젓가락을 기념품으로 주는 식당이죠. 요즘엔 디저트용 젓가락도 만들고 있어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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