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동생에 엄마 젖 뺏긴 신윤복의 질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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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그림을 그리다/고연희 김동준 정민 외 지음/552쪽·3만5000원/태학사

조선화가 신한평이 그린 ‘자모육아’(왼쪽).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인의 표정이 자애롭다. 반면 그의 아들 신윤복이 그린 ‘아기 업은 여인’에서는 가슴을 드러낸 채 아기를 업은 여인이 쓸쓸한 표정으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왼쪽 그림의 울고 있는 아이는 신윤복으로 추정된다. 간송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화가 신한평이 그린 ‘자모육아’(왼쪽).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인의 표정이 자애롭다. 반면 그의 아들 신윤복이 그린 ‘아기 업은 여인’에서는 가슴을 드러낸 채 아기를 업은 여인이 쓸쓸한 표정으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왼쪽 그림의 울고 있는 아이는 신윤복으로 추정된다. 간송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도세자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개 그림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새끼 강아지 두 마리가 반가운 몸짓으로 큰 개를 향해 달려가는데 정작 큰 개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이 그림을 두고 정병설 서울대 교수는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를 표현한 것 같다”고 해석한다. 사도세자가 어려서부터 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받지 못했듯이 이 그림은 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싶은 사도세자, 그리고 그에게 늘 엄격했던 영조를 그렸다는 분석이다.

연구모임 ‘문헌과 해석’의 인문학자 32명이 함께 쓴 이 책은 단순히 옛 그림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옛 그림을 매개로 한국의 역사 철학 문학 회화를 줄줄이 풀어낸다. 한국한문학, 조선시대사, 한국미술사, 한국고전소설, 한국음악학 등 한국학 각 분야 전공자들의 내공이 모여 알찬 양서를 빚어 냈다. 대중을 상대로 읽기 쉽게 썼고 컬러 도판 230여 점이 볼만하다. 이들이 2011년 출간한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태학사)의 후속편 격이다.

흥미로운 그림은 혜원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 중 하나인 ‘아기 업은 여인’. 혜원은 상식을 거슬러 아기 업은 여인마저 에로틱하게 표현했다. 날씬한 여인이 꽉 끼는 저고리 밑으로 젖가슴을 드러낸 채 아기를 업고 있다. 여인은 인심 넉넉해 보이는 여염집 아낙네가 아니라 기생에 가까운 외모이며, 차갑게 입을 다문 채 뭔가 생각에 빠져 있다. 반면 혜원의 아버지인 신한평의 그림 ‘자모육아’에서는 후덕한 여인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여인의 오른쪽에 서 있는 사내아이가 동생에게 어머니를 빼앗긴 것을 질투하는 듯한 표정으로 징징 울고 있는 게 재미있다. 여인 왼쪽의 여자 아이는 다 컸다는 듯 의젓해 보인다. 정우봉 고려대 교수는 “실제로 신한평은 두 아들과 외동딸을 두었는데, 우는 아이가 신윤복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18세기 화가 이인상의 ‘검선도(劍仙圖)’가 “서얼에 의한, 서얼을 위한, 서얼에 관한 그림”이라는 장진성 서울대 교수의 분석도 눈길을 끈다. 검선도는 서얼인 이인상이 역시 서얼인 선배 유후를 위해 그린 그림이다. 유후가 거대한 소나무 아래서 신선처럼 수염을 휘날리며 매서운 눈매를 하고 앉아 있다. 장 교수는 그의 오른 무릎 아래 그려진 칼에 주목한다. 능력이 뛰어나도 고위 관직에 나갈 수 없는 서얼에게 칼집 속에 든 칼은 무용지물이라는 점에서 신분적 불평등의 상징이었다. 이인상은 칼집에서 뽑은 칼을 그려 넣어 그 반대 의미를 전달하려 했다. 물론 칼이 극히 일부만 뽑힌 것은 유후가 하급 관료로 일했지만 세상에 쓸모 있는 인물은 되지 못했음을 미묘하게 암시한다는 것이다.

책 속의 멋스러운 옛 그림과 저자들의 입담이 독서를 부추긴다. 초겨울 뜨뜻한 방에서 편안한 맘으로 뒤적이기에 딱 좋은 인문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한국학#그림을 그리다#문헌과 해석#신윤복#이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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