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말이었던 천생 드러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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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58세 ‘들국화’ 원년 멤버 주찬권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씨를 지난해 4월 그가 운영하는 경기 성남시 정자동의 라이브 클럽 ‘버디 라이브’에서 만났다. 작은 지하 공간이었지만 그는 스타디움 무대에라도선 듯 폭풍 같은 연주를 토해 냈다. 성남=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씨를 지난해 4월 그가 운영하는 경기 성남시 정자동의 라이브 클럽 ‘버디 라이브’에서 만났다. 작은 지하 공간이었지만 그는 스타디움 무대에라도선 듯 폭풍 같은 연주를 토해 냈다. 성남=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난해 4월 한 드러머가 6집 솔로 앨범을 냈다. 기자는 당시 그가 운영하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작은 라이브 클럽을 찾았다. 40m²쯤 되는 허름한 지하 공간에서 그는 앨범에 담긴 9곡의 노래와 모든 악기 연주를 혼자 다 했다고 했다. 클럽 운영은 잘 안 됐고, 그는 밤이면 아무도 없는 클럽으로 내려가 작곡과 녹음에 열중했다. 20일 오후 향년 58세로 별세한 주찬권 이야기다.

그는 웃음으로 말을 대신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주찬권 6집의 제작 투자와 홍보, 마케팅을 맡았던 미러볼뮤직의 이창희 대표는 “그 정도 전설적인 음악인이 시쳇말로 ‘가오’ 잡지 않고, 내가 좀 어려우니 이런저런 투자를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부탁해 와 놀랐다”고 했다.

고인은 1980년대 말 들국화 해체 후 음악인으로서 가장 어둡고 낮은 곳을 체험했다. “스탠드바에서 오르간, 카바레에서 베이스, 유흥업소에서 키보드도 쳐 봤죠.” 그는 18년 전 이혼 후 두 딸을 혼자 키우며 겪은 일을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들국화 팬이었던 업소의 취객이 그를 알아보고 “형님,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하며 울더라는 얘기를 전하면서 “들국화가 오히려 내게 아픈 이름이었던 적도 많아”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어떤 땐 좋은 걸(들국화 활동) 누린 시간 때문에 안 좋은 걸 겪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 좋은 게 나쁜 건지, 나쁜 게 좋은 건지 헷갈려서 묘하더라고요.”

드러머, 작곡가, 보컬, 프로듀서로서 그의 역량이 과소평가됐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솔로 가수로 6장의 앨범을 내며 그는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직접 노래했다. 드러머 장혁 씨(신승훈·성시경 밴드)는 “고인의 연주는 너무 개성이 강해 주문된 연주를 해 돈을 버는 활동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행진’을 포함한 들국화의 드럼 연주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해석이 담겨 있다”고 했다.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는 “추억을 반추하는 대신 6집까지 고단한 음악적 여정을 이어 왔다. 드러머뿐 아니라 기타리스트, 작곡가, 보컬로서 평단에서마저 과소평가됐다”고 말했다.

고인은 다음 달 나올 예정이던 들국화 4집을 위해 20여 곡의 드럼 녹음을 끝내 놨다고 한다. 들국화 2집에 실렸던 ‘또다시 크리스마스’의 리메이크 버전을 위한 메인 보컬도 녹음해 뒀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포털 사이트의 연예 뉴스난에서 매일 불꽃놀이를 터뜨리는 가요계에서 그는 어쩌면 들국화보다 작은 꽃이었는지 모른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2일 오전 11시 20분. 고인의 유해는 화장돼 경기 광주시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 안치된다. 6집 제목은 ‘지금 여기’였다. 그는 지금 여기 없다.

‘어느새 계절은 바뀌고/아직도 내 마음 불타고 있는데…/벌써 어느새 낙엽은 떨어져/하지만 아직도 내겐…/아직도/내겐’(주찬권 ‘아직도 내겐’ 중·2012년)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들국화#주찬권#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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