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카페로 진화한 만화방… 담배 냄새 대신 커피향 솔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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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홍대 주변서 잇달아 개점… 고급 인테리어에 커피 한잔의 여유
여성 독자도 부담없이 읽고 즐겨… 젊은층 취향 반영 일일만화 배제
웹툰 단행본-베스트셀러에 집중… “새로운 시도, 콘텐츠에 성패 달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카페 데 코믹스’를 찾은 손님들이 만화 삼매경에 빠져있다. 이곳은 세련된 인테리어와 커피향, 만화카페의 마스코트로 사랑받는 고양이 등으로 젊은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카페 데 코믹스’를 찾은 손님들이 만화 삼매경에 빠져있다. 이곳은 세련된 인테리어와 커피향, 만화카페의 마스코트로 사랑받는 고양이 등으로 젊은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만화카페 ‘카페 데 코믹스’가 나타났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옛 만화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깔끔한 실내는 다양한 캐릭터를 살린 피규어로 장식돼 있고 한쪽에선 커피전문점에서 볼 수 있는 고급 커피기계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고양이 5마리도 실내를 누볐다. 만화방이 불황이라지만 이곳은 60석 중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커플이나 여성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아이를 데려온 부모도 함께 만화책을 보고 있다. 만화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담배 재떨이와 자장면 그릇은 찾을 수 없었다.

올해 3, 4월 젊은이들이 몰리는 서울 신촌과 홍익대 주변에 만화카페 세 곳이 문을 열었다. 30대 초반 청년 사장들이 운영한다. 이들은 만화방에서 진화한 만화카페의 성공을 장담했다.

‘카페 데 코믹스’ 신촌점 사장 박일열 씨(30·대기업 연구원)는 수학능력시험 전날까지 만화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만화광이다. 신촌점은 세 번째 만화카페다. 경기 광명시에서 처음 열어 만화카페의 밑그림을 그렸다. 광명에서 했던 실험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대형 상권인 신촌으로 진출했다. 앞으로 ‘만화카페 프랜차이즈’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이곳은 커피 한 잔과 만화 2시간에 6500원으로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박 사장은 “커피전문점 못지않은 커피와 인테리어, 그리고 고양이로 과거 만화방과 차별화했다”며 “주로 연인이나 가족, 여성 손님이 많고 혼자 온 남자 손님은 드물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대학생 이상진 씨(27)는 “만화방 하면 남자들끼리 모여서 만화책 보는 곳으로 생각했는데 아기자기하고 쾌적해 데이트 장소로도 딱이다”라고 말했다.

홍대입구역 인근의 만화카페 ‘킥킥나무’ 사장 조승아 씨(33·여)는 판타지 작가 지망생이다. 그는 만화방의 잠재 고객인 여성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킥킥나무’를 방문했을 때 홀로 찾은 여자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화분이 놓인 2층 창가에서 만화책을 읽으면 제법 운치가 있다. 조 사장은 “담배연기로 가득한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떻게 하면 여자 손님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만화 대여점 수가 줄어 여성들이 만화 볼 곳을 찾기 힘든데 만화카페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만화카페가 과거 만화방을 대체하며 사랑받을 수 있을까.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다. 만화방 시장은 10여 년째 내리막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2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전국의 만화방·만화카페는 2009년 936곳에서 2011년 811곳으로 감소했다. 전국만화방연합회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1만여 곳에서 1000여 곳으로 급격하게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정승만 만화방연합회 회장은 “7, 8년 전부터 카페 이름을 단 만화방이 늘더니 고급 인테리어와 커피를 갖춘 만화카페가 생겨나고 있다”며 “젊은 사장들의 새로운 시도가 반갑고 응원도 보내지만 결국 만화방은 커피나 인테리어보다 만화책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만화방이든 만화카페든 결국 그 성패는 만화 콘텐츠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기존 만화방과 만화카페의 차이는 일간만화 또는 매일지로 불리며 하루하루 출간되는 ‘일일만화’의 유무에서 갈린다. 황성 김성동 김성모 작가 등이 낸 일일만화는 40, 50대 만화방 독자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새로 생긴 만화카페는 젊은층 취향을 고려해 일일만화는 받지 않고 웹툰 단행본이나 베스트셀러 만화에 집중한다. 만화방을 14년간 운영해온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만화방의 김활란 사장(51·여)은 “젊은층 공략도 중요하지만 만화방 매상을 꾸준히 올려주는 일일만화 고객층을 무시하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담배는 모든 만화방이나 만화카페의 숙제다. 만화방도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흡연석을 따로 분리하자 매출액이 감소했다고 한다. 한 만화방 주인은 “흡연실 안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라고 하면 손님들이 갑갑하다고 난리다. 흡연 손님이 많으니 슬그머니 문을 열어둘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만화방#만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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