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단테의 지옥, 생물학 테러로 돌아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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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 1, 2/댄 브라운 지음·안종설 옮김/1권 374쪽·2권 375쪽/각권 1만3000원·문학수첩

총 749쪽에 달하는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명확한 의도가 보인다. ‘독자가 한순간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겠다’는 것.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1, 2권을 통틀어 숨 가쁘게 이어진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속도감이 있다. 작가는 이야기를 무려 104장(章)으로 분절해 장당 적게는 3, 4쪽만 할애해 가속페달을 밟는다. 작가가 창조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이리저리 몸을 흔들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른다. 전형적인 오락 소설의 정점을 보여준다.

팩션(사실에 바탕을 둔 소설)을 즐기는 작가가 이번에 주목한 곳은 이탈리아 피렌체다. 그중에서도 피렌체에서 나고 자라다 추방당한 알리기에리 단테(1265∼1321)에게 초점을 맞췄다. 단테의 ‘신곡’ 가운데 ‘인페르노(지옥편)’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집필했다는 저자는 단테가 그린 세기말적 불안과 공포를 현대로 끌어온다. 그 공포의 실체는 생물학적 테러 위협이다.

작품은 초반부터 독자를 팽팽하게 잡아끈다. 하버드대 교수인 로버트 랭던은 의식을 잃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다. 이틀 전 하버드대 캠퍼스를 걷던 게 마지막 기억인데 깨어나 보니 엉뚱하게도 피렌체에 와 있다. 머리에는 총상으로 입은 상처까지 있다. 제대로 정신도 못 차린 상태에서 이번엔 괴한이 침입해 의사 한 명을 총으로 쏘고, 랭던의 목숨까지 노린다. 랭던은 다른 여자 의사인 시에나 브룩스의 도움을 받아 괴한을 따돌리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이때부터 정신없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괴한뿐만 아니라 군인, 경찰까지 합세해 랭던의 뒤를 쫓는다. 랭던은 자신의 재킷 안에 들어있던 최첨단 소형 영사기를 통해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암호 글 ‘케르카 트로바(구하라, 그리고 찾으라)’를 찾아낸다.

하나의 암호를 풀면 다음 암호가 제시되는 숨바꼭질 같은 전개가 이어진다. 짐짓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는 구성 방식을 작가는 유명 건축물의 역사와 접목해 흥미롭게 풀어간다. (비록 쫓기는 형국이지만) 랭던은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 피티 궁전, 두오모 광장,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산 조반니 세례당,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 터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박물관의 역사와 그 속에 들어있는 미술품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흡사 랭던을 따라 유럽 고미술 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한 ‘인페르노’로 돌아온 미국 작가 댄 브라운. 역사와 추리를 접목해 지식과 재미를 주는 그의 탁월한 역량은 녹슬지 않았다. 문학수첩 제공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한 ‘인페르노’로 돌아온 미국 작가 댄 브라운. 역사와 추리를 접목해 지식과 재미를 주는 그의 탁월한 역량은 녹슬지 않았다. 문학수첩 제공
작가는 1권 중반 이후가 되면 생물학적 테러 용의자와 그 테러 시도 이유를 밝혀버린다. 그러고는 괴한, 군인과 경찰,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선악을 뒤바꿔버려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를테면 의사를 쐈던 괴한의 총이 사실 공포탄이었고, 살인은 연출된 것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진실 폭로’가 반복돼 혼란스럽고, 조금 짜증까지 난다. 물론 마지막에 이런 혼돈을 말끔히 정리하는 저자의 필력에는 탄복했지만 말이다.

책을 읽고 나면 피렌체를 여행할 때 각별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박진감 있는 소설 장면이 떠오를 것 같기 때문이다. 불현듯 저자가 차기작의 배경으로 한국을 골라, 랭던이 경복궁이나 석굴암에 숨는 상상을 해본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효과적인 한국 홍보 방법이 아닐까.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인페르노#댄 브라운#피렌체#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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