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쑤∼ 서편제는 역시 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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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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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서편제’ ★★★★

창극 ‘서편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송화와 동호의 해후 장면에선 명창 안숙선이 송화 역으로 등장해 판소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국립극장 제공
창극 ‘서편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송화와 동호의 해후 장면에선 명창 안숙선이 송화 역으로 등장해 판소리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국립극장 제공
뮤지컬보다 역시 창극이 제 맛이었다. 지난달 27∼31일 서울 장충동 해오름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국립창극단의 ‘서편제’(김명화 작·윤호진 연출)는 소설, 영화, 뮤지컬로 제작된 작품이 지닌 판소리의 맛을 가장 구성지게 구현해냈다.

씨가 다른 오누이를 데리고 남도를 떠돌던 소리꾼 유봉은 오빠 동호가 떠나간 뒤 혼자 남은 누이 송화의 눈을 멀게 해 마음속 깊은 한을 심어준다. 뒤늦게 누이를 찾아 나선 동호가 20여 년 뒤 어느 쓸쓸한 주막에서 득음(得音)한 송화를 만나 눈처럼 쌓이고 술처럼 빚어진 그들 인생의 한을 한바탕 소리로 풀어낸다는 원작의 골격은 그대로다.

다만 매 장면 판소리를 하는 장면이나 주인공들 내면의 심리를 펼치는 장면에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그에 부합하는 대목을 끌고 와 절묘하게 병치했다. 영화나 뮤지컬에선 오누이가 해후하는 장면처럼 극적인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만 이를 적용하던 것이 창극에선 거의 전 장면에 쓰였다.

예를 들어 오누이의 어미와 유봉이 첫정을 맺는 장면에선 춘향가의 ‘사랑가’, 사별한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을 표현할 때는 춘향가의 ‘쑥대머리’, 어미 잃고 태어난 송화의 유년 이야기가 등장할 때는 심 봉사가 심청의 기구한 삶을 소개하는 대목, 송화가 유봉의 삼년상을 치르고 떠날 때 황후가 된 심청이 아비를 그리워하는 대목이 펼쳐진다. 또 송화가 판소리 명창대회에 출전하는 장면을 집어넣어 판소리의 다채로운 묘미를 두루 담아냈다.

한국의 빼어난 풍광을 절묘하게 살려낸 무대연출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에서 유봉과 오누이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는 굽이굽이 황톳길을 형상화한 세트(박동우)에 남도의 사계절 풍광을 수묵화 느낌으로 투사한 영상(정재진)이 빚어낸 그림이 아름다웠다. 화선지 느낌이 물씬한 수직 블라인드 막에 흰 포말이 이는 폭포수를 형상화한 장면과 동호가 자신이 오라비임을 감추고 송화의 소리를 청해 듣는 마지막 대목에서 흰 눈이 쏟아지는 장면도 일품이었다.

유봉과 동호의 갈등구조만 좀더 설득력 있게 보완한다면 국립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삼기에 손색이 없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창극#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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