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와 통한 바로크 “네 자신을 잃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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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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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국제음악제 개막작, 오페라 ‘세멜레 워크’ ★★★★

22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아시아 초연으로 무대화된 ‘세멜레 워크’.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22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아시아 초연으로 무대화된 ‘세멜레 워크’.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시작부터 파격이었다. 녹색 노란색 푸른색 머리카락을 한껏 부풀린 펑크족들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들고 순백색의 런웨이(패션쇼 무대)로 걸어 나왔다. 밑단을 쭉 뜯어버린 듯한 청바지를 입은 남자는 테오르보(류트를 개량한 바로크시대의 대형 현악기)를 질질 끌며 등장했다. 이들은 22, 23일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작인 오페라 ‘세멜레 워크’에서 반주를 맡은 독일의 원전악기 연주단체인 칼레이도스코프 앙상블 단원이다.

헨델의 18세기 오페라 ‘세멜레’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2010년 독일 하노버 헤렌하우젠 공연예술제에서 초연됐다. 10여 명이 이끌어가는 원작에서 주변 인물은 다 털어내고 불멸의 신이 되길 염원하는 여인 세멜레(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자모스카)와 로마신화의 주신 주피터(카운터테너 아르민 그라머) 둘의 이야기에만 집중했다. 2시간 반에 이르는 원작은 80분으로 줄였다.

‘펑크 패션의 여왕’이라 불리는 영국 디자이너 비비언 웨스트우드가 의상을 담당해 신선한 패션쇼 오페라가 됐다. 웨스트우드의 최신 컬렉션 두 벌을 포함해 300여 벌의 드레스가 선을 보였다. 화려하면서도 전위적인 웨스트우드의 드레스를 입은 전문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는 사이에서 성악가는 갈망과 탐욕을 노래하고 연기했다.

‘세멜레 워크’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를 누렸다. 오페라의 형식을 깨뜨려 패션쇼와 음악극이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바로크 악기에 1970∼80년대에 사용했던 소형 확성장치를 연결해 부서지는 굉음과 불협화음을 증폭시키며 소리의 층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30여 명의 합창단은 일반 관객들과 섞여 앉은 채 노래하다가 세멜레가 기쁨의 황홀경을 찬미하는 장면에서는 캣워크로 나와 성악가와 모델, 연주자들과 어우러졌다. 관객들도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흥을 돋웠다.

공연이 끝난 뒤 만난 루드게르 엥겔스 연출은 “기존의 구조를 부수고 깨뜨려 새로운 것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바로크와 펑크는 일맥상통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오페라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보톡스를 맞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수술 등 현대 기술을 통해 뭐든 다 할 수 있을 거라 믿는 현대인의 정신병을 얘기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해 결국은 본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통영=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세멜레 워크#바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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