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문집 총정리 ‘여유당전서’ 74년만에 ‘정본’ 출간 지휘 송재소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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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이 방대한 1인저술… 유네스코 등재 추진해볼만”

다산 정약용의 향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짙어진다. 다산 시 연구의 권위자인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1981년 출간돼 사랑받다가 절판된 ‘다산 시선’(창비)을 내년 초 수정증보판으로 역주해 다시 출간한다. 다산의 시를 찾는 독자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다산 정약용의 향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짙어진다. 다산 시 연구의 권위자인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1981년 출간돼 사랑받다가 절판된 ‘다산 시선’(창비)을 내년 초 수정증보판으로 역주해 다시 출간한다. 다산의 시를 찾는 독자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는 한국학의 보고(寶庫)입니다. 위당 정인보 선생은 ‘근세조선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다산의 유저(遺著)를 읽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지요. ‘정본(定本) 여유당전서’ 출간은 한국학의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입니다.” 조선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저술을 총망라한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가 출간 74년 만에 ‘정본 여유당전서’로 새롭게 나온다. 다산학술문화재단의 주도로 10년간 매달린 끝에 18일 정본 37권과 별책 1권이 도서출판 사암에서 출간되는 것.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태영 경희대 명예교수, 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 등 다산 연구자가 총동원됐고 실무자까지 총 80여 명이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다. 》
편집위원장으로 10년간 정본 출간을 진두지휘한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69)는 “다산의 사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자연과학 의학 군사학 지리학 등 다방면을 아우르며 그 깊이도 상당했다”며 “한 사람이 이처럼 방대한 저술을 남긴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기 어렵다. 여유당전서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추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여유당전서’는 1934∼38년 다산의 외현손 김성진과 국학자 정인보, 안재홍이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에서 시에 이르기까지 필사본으로 전해 내려오던 다산의 저술을 최초로 모아 154권 76책의 활자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출판사 신조선사가 간행해 ‘신조선사본 여유당전서’로도 불린다. 신조선사본은 다산 연구의 교과서라 할 만하지만, 오·탈자가 다수 발견됐고 다산이 쓰지 않은 글이 잘못 수록되거나 저술의 순서가 뒤섞인 문제가 있었다.

연구의 기본서가 되는 정본에서는 이런 문제를 바로잡고 기존에 누락됐거나 새롭게 발견된 다산의 저술을 보충했다. 한문 원문에는 없는 13가지 문장부호로 표점(標點) 작업을 하고 띄어쓰기와 가로쓰기를 시도해 읽기 쉬워졌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 일본에 흩어진 다산 저술의 필사본 300여 종을 수집해 일일이 비교하며 정확도를 높였다. 송 교수는 “지금까지 신조선사본을 토대로 발표된 논문이 2300여 편, 단행본이 100여 권에 이른다”며 “정본 출간을 계기로 다산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정본을 볼 수 있는 서비스도 추진 중이다. 외국 학자도 정본에 접근할 수 있고, 독자가 정본의 오류를 지적하면 고치는 ‘집단지성’이 활용된다. 송 교수는 “여유당전서는 한자 500만 자가 넘는 분량인데,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100% 완전한 정본을 만들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웹을 통해 다같이 완성도를 높여 가면 된다”고 말했다.

여유당전서를 모두 읽기 어려운 대중이나 외국인을 위해 송 교수는 ‘여유당전서 절요(節要)’ 또는 ‘다산학 절요’를 낼 계획도 있다. 여유당전서의 핵심만 뽑아 한 권 분량으로 정리한 책이다.

다산학술문화재단은 정본에 이어 ‘다산학 사전’을 편찬하고 있다. 다산의 저술 주제가 다양한 만큼 여유당전서 속 중요한 내용을 표제어로 내세워 뜻을 풀어내면 곧 조선후기의 백과사전이 된다. “다산은 당시 조선에 털끝 하나 병들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농업제도, 군사제도 등 각계의 병을 진단하고 고치려 하니 다산의 관심이 넓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다산이 태어난 지 250년이 지난 지금도 다산에 주목하는 이유를 물었다. “국가가 총체적으로 위기에 처했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다산은 제도부터 국민의식까지 모든 것을 바꾸는 근본적 개혁을 주장하고 글을 통해 그 처방전을 제시했습니다. 다산의 개혁정신은 어느 시대에나 본받을 가치가 있어요.”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다산 정약용#여유당전서#송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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