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yle]박원상 “몸 묶고 눈 가린채 물고문 연기 ‘죽는게 이런 거구나’ 섬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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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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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영동 1985’ 故 김근태 의원 역 박원상

박원상은 “촬영장에 두꺼비가 들어왔다. 김근태 의원이 몸담은 민청년의 상징이 두꺼비라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encut@donga.com
박원상은 “촬영장에 두꺼비가 들어왔다. 김근태 의원이 몸담은 민청년의 상징이 두꺼비라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encut@donga.com
숨조차 여유롭게 쉴 수 없는 105분의 러닝타임. 영화 ‘남영동 1985’의 박원상(42)은 관객들을 남영동의 고문실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김종태 역을 맡은 박원상은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간 겪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받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다. 영화 속 김종태는 발가벗겨진 채 잔인한 고문을 당했고, 그의 인권은 철저히 짓밟혔다.

“다른 작품과 달랐어요. 시사회 때 저의 연기보다 내용에 눈이 더 가더라고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어요.”

하지만 고문 받는 연기보다 힘들었던 건 그의 ‘자의식’이었다. ‘88학번’인 그는 친구들이 학생운동을 하고 있을 당시 연극 활동에 전념했다. 그랬던 그가 영화에서 민주화를 위해 싸운 인물을 연기하려니 가슴 한편에서 ‘연기자 박원상’과 ‘인간 박원상’이 갈등을 빚은 것이다.

“한평생 굳은 심지로 살았던 올바른 분이잖아요. ‘과연 사람들이 나를 보고 공감해 줄까’라는 고민에 빠져 살았어요. 또 1988년에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의 시선이 걱정되기도 했고요.”

두려움이 앞선 박원상은 정지영 감독에게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이두한 역(이경영)을 맡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배 이경영의 “쓸데없는 소리 마라”라는 한마디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김종태로 돌아온 박원상은 칠성판에 묶여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다. 그는 “몸이 묶인 상태에서 눈을 가리고 물이 쏟아지니 정말 막막했다”라고 힘들었던 촬영 과정을 설명했다. “촬영 전 제가 힘껏 몸부림을 치면 ‘컷’을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상대 연기자들이 그것도 연기인 줄 알고 더 세게 붙잡는 거예요. ‘아! 이제 큰일 났구나’ 하고 생각했죠.”

계속되는 고문에 적응이 될 무렵, 박원상은 또 다른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익숙함’과의 싸움이었다.

“김근태 님의 ‘남영동’ 수기에는 ‘고문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고 적혀 있어요. 그런데 연기가 계속되면서 익숙해지더라고요. ‘연기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에 또다시 갈등에 빠지게 됐죠. 한편으로는 ‘실제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고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치겠더라고요. 촬영 내내 가슴이 먹먹했어요.”

박원상은 ‘남영동’ 수기 중 ‘죽이고 싶도록 가장 미웠던 건 고문을 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자 아나운서의 멘트였다’라는 구절에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그는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는 죽어 가고 누군가는 웃는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부디 이 영화로 서로 아픔을 공유하고 이런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박원상은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남기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보기 힘든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연기했으니 많은 분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김근태 의원님께서도 절 격려해 주시겠죠?”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 | 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남영동 1985#박원상#김근태#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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