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일어난 일을 다 말할 거예요/아너미 베르브룩스 글, 그림·지명숙 옮김
44쪽·1만1000원·뜨인돌어린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잇따른 성폭력 사건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불편하지만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 주제를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는 또 다른 고민거리. 벨기에 태생의 작가는 어느 날 느닷없는 일을 겪게 된, 작고 어린 새를 통해 피해 어린이의 감정을 세심히 그려 내면서 부모의 바람직한 대처 방법을 제시한다.
엄마 아빠가 먹이를 구하러 간 사이 어린 새에게 엄청난 비밀이 생겨 버렸다. 커다랗고 시커먼 까마귀가 나타나 어린 새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가 네 곁으로 가서 잠시 앉아도 될까?” 까마귀는 어린 새의 가냘픈 외침은 아랑곳없이 작은 새를 아프게 했다. 그러고는 비밀을 지키지 않으면 엄마 새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어린 새는 두렵고 무서웠다.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둥지 밖으로 나가지만 않았다면….’ 엄마가 건넨 맛있는 음식도 먹지 않았고 아빠의 품도 피했다. 집에 홀로 남는 게 무서웠지만 엄마 아빠에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리로 보송보송한 깃털을 한 가닥씩 뽑아냈다. 피부가 쓰라렸지만 마음의 아픔에 비하면 이쯤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온통 털투성이가 된 집을 보고 깜짝 놀라는 부모에게도 비밀을 털어놓지 못했다. 만약 그랬다가는 까마귀가….
머릿속엔 온통 무서운 까마귀 생각뿐인 어린 새도 이제 나는 법을 배울 때가 됐다. 까마귀가 있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망설여졌지만 엄마 아빠의 응원에 힘을 냈다. “아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엄마 아빠가 언제나 널 지켜 줄 거야.” “자, 다시 한번 해 보렴! 넌 해낼 수 있어!”
빙글빙글 날아다니던 어린 새는 어느 날 까마귀와 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날개가 굳어 버린 것 같았다. 까마귀는 바짝 다가붙었다. “이야아, 보기 좋은데! 이제 제법 어엿한 아가씨 티가 나는걸.”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어린 새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당장 그만두란 말이에요! 날 좀 제발 내버려 두라고요!”
몸도 마음도 기진맥진. 어린 새는 용기를 내 모든 비밀을 털어놓았다. 엄마 아빠가 끝까지 지켜 주고 사랑해 줄 것을 믿었기에. 아동 성폭력 피해자 지원 기관인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가 제공한 ‘어린 새에게 이렇게 말해 주세요’, ‘어린 새에게 이런 말은 피해 주세요’를 책의 마지막 장에 실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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