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와 ‘쓸모없음’에서 존재의 이유를 깨닫다

  • Array
  • 입력 2012년 10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기존의 예술형식에 대한 ‘노골적 부정과 역설, 통렬한 비판’을 담은 원로작가 이승택 씨의 전위예술 여정을 되짚는 회고전이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휘날리는 깃발을 통해 바람을 포착한 프로젝트(‘바람’·1969년)를 비롯해 1960년대부터 대자연의 기운을 주목한 작업을 발표했다. 성곡미술관 제공
기존의 예술형식에 대한 ‘노골적 부정과 역설, 통렬한 비판’을 담은 원로작가 이승택 씨의 전위예술 여정을 되짚는 회고전이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휘날리는 깃발을 통해 바람을 포착한 프로젝트(‘바람’·1969년)를 비롯해 1960년대부터 대자연의 기운을 주목한 작업을 발표했다. 성곡미술관 제공
작품마다 어찌나 밀도가 높은지 한데 모인 작품들은 전시장을 뚫고 나갈듯 거센 기운을 뿜어낸다. 돌을 물렁물렁한 물체처럼 끈으로 칭칭 동여맨 작품을 비롯해 링거를 주렁주렁 매단 돌부처와 고인돌, 휘날리는 깃발로 바람을 담아낸 프로젝트, 남녀 성기와 관련된 노골적 작품까지. 장르와 형식의 경계를 종횡무진 넘나든 50여 년 예술행로가 관객을 압도한다.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 전관에서 21일까지 열리는 ‘이승택 1932∼2012: 지구, 바람과 불’전이다. 한국의 대표적 전위예술가로 꼽혀온 작가의 80세를 기념한 회고전으로 대형 설치작품을 중심으로 조각 회화 도자 사진 등 80여 점과 육필원고 등을 아울렀다. 세상을 뒤집어보는 작가의 삐딱한 시선과 도전정신을 압축한 전시다(02-737-7650).

중견작가 박불똥의 ‘못-쓸-것’전은 또 다른 측면에서 ‘전복의 미학’을 만나게 한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선두에 섰던 작가는 거대 담론에서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눈 돌린 사진작업을 선보였다(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트렁크 갤러리. 02-3210-1233).

주류의 가치에 도전하면서 꿋꿋하게 자기 세계를 지켜온 이들의 전시는 ‘거꾸로’와 ‘쓸모없음’에 감춰진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한다.

파격과 실험으로 ‘예술의 전복’

1980년대 민중미술의 선두에 섰던 박불똥의 ‘못-쓸-것’전은 하찮고 사소한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 사진 작업을 선보인다. ‘플라워’는 우연히 그가 길바닥에서 마주친 선홍색 조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품이다. 트렁크갤러리 제공
1980년대 민중미술의 선두에 섰던 박불똥의 ‘못-쓸-것’전은 하찮고 사소한 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 사진 작업을 선보인다. ‘플라워’는 우연히 그가 길바닥에서 마주친 선홍색 조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품이다. 트렁크갤러리 제공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 그리고 다 비틀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자화상에 쓴 문구처럼 이 씨의 삶과 예술을 상징하는 말은 ‘안티(Anti)’와 ‘반골’정신. 대학시절 그는 남들이 석고 데생을 그릴 때 검은 종이에 분필로 비너스상을 그려 교수에게 혹평을 들었고, 상식을 비웃듯 받침대 하나에 두 개의 조각상을 놓은 작품을 국전에 출품했다 낙선한다. 이후 작가는 주류와 타협하지 않고, 특정 그룹이나 집단 속의 안주를 거부하면서 평생 파격과 실험을 추구했다.

그는 서구의 얄팍한 모방이 아니라 우리의 속담과 전통을 재해석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선인들이 돗자리를 짤 때 사용했던 도구인 고드랫돌의 개념을 현대미술로 옮겨온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돌과 링거 등 다양한 소재를 꽁꽁 동여매고 늘어뜨리는 작업으로 진화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고 물, 불, 연기 등 형체가 없는 비(非)물질을 다루는 퍼포먼스에 주력했다. 박천남 학예연구실장은 “그의 작업은 기존 예술형식에 대한 노골적 부정과 역설, 통렬한 비판 그 자체”라고 평했다.

이해와 애정으로 ‘일상의 전복

남루한 철문에 달린 녹슨 창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형상을 발견하고, 바닥에 버려진 한 송이 조화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읽어낸다. 박불똥의 사진은 한때는 쓸모 있었으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빛을 잃어버린 것을 향해 따스한 이해와 애정을 보낸다. “나는 그 ‘못 쓸 것’이 명색이나마 미술작품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쓸 것’으로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

음료수 캔의 잔해를 유목민의 삶을 살다 남긴 유해로 바라보고, 녹슨 쇠붙이로 나무를 만들어 ‘常녹樹’라 이름을 붙이고, 못 박던 망치를 못들이 제압한 사진으로 권력을 풍자한다. 구강위생용품에서 청소도구로 혹사당한 1회용 칫솔을 가리키며 쓰레기가 될 때까지 일했던 지난날의 헌신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못 쓸 것’이란 말을 뒤집어 미미하고 버려진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일깨우는 사진들이 찡한 울림을 남긴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미술#전시#성곡미술관#트렁크 갤러리#이승택#박불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