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상징 ‘어보’에 새겨진 내밀한 궁궐 정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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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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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단장한 국립고궁박물관 ‘어보’ 특별전

1776년 영조가 왕세손인 정조에게 내린 은인.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에 감동해 어보를 내렸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1776년 영조가 왕세손인 정조에게 내린 은인.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에 감동해 어보를 내렸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정조(1752∼1800)는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이런 정조를 할아버지인 영조(1694∼1776)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1776년 83세의 영조는 당시 세손인 정조의 효심에 감동해 은으로 만든 어보(御寶)를 내렸다. 효심이 만세(萬歲)에 전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유세손서(諭世孫書)’도 함께 내렸다.

조선 왕조의 진면목이 담긴 어보를 조명한 특별전 ‘왕의 상징, 어보’가 9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1일 국립고궁박물관 재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전시다. 태조(1335∼1408)의 가상시호(기존 시호에 또 다른 시호를 추가하는 것) 금보(金寶)를 비롯해 어보 63과(점)와 어보의 이동과 보관을 위해 사용했던 보관용품, 어보의 인문(印文)이 찍혀 있는 국보 제292호 ‘상원사중창권선문’ 등 총 229점의 유물을 선보인다.

어보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제작한 인장(印章)으로 국가의례 때 왕과 왕후, 왕세자, 왕세자빈, 빈 등 왕실 인물에게 수여됐다. 왕과 왕후에게 주어질 경우 보(寶)로, 왕세자 이하는 인(印)으로 새겼고, 이들이 세상을 떠나면 어보도 종묘에 함께 모셨다.

왕실의 상징인 어보엔 궁궐 속 내밀한 역사와 조선의 정치사가 새겨져 있다. 영조가 정조에게 내린 은인(銀印)에는 정조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영조의 의도가 담겨 있다.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어보는 남아 있지 않다. 중국이 어보에 용을 새긴 것과 달리, 조선은 제후국에 준해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를 만들었다. 구한말 고종(1852∼1919)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한 후에야 어보에 용을 새길 수 있었다.

박물관 상설전시관은 6개월간의 보수와 개편을 통해 12개실에서 10개실로 통폐합했다. 전시 유물은 900여 점에서 2000여 점으로 늘었고 전시 내용도 바뀌었다. 제1실 ‘조선의 국왕’에는 특정 왕과 관련된 유물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코너를 마련했는데 첫 대상으로 정조를 조명했다.

왕의 어진(초상화)을 보관한 창덕궁 선원전 내부 감실(龕室)과 왕실도서관, 서구화한 대한제국 황실 궁궐 내부 등을 재현했다. 아이패드를 통해 증강현실로 동궐도(東闕圖·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그림)를 감상할 수 있다. 특별전과 상설전시 모두 무료. 02-3701-7500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김지은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국립 고궁박물관#전시. 문화재#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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