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토크쇼 자리 배치의 정치학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1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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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방송된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계단식 좌석 가장 뒷줄의 출연자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거기 남자들, (앞줄) 어린 애들한테만 가지 말아요."(오연정)

"지난번 저쪽 구석에 앉았었는데, 오늘도 살짝 여기(뒷줄) 앉히네. 누가 모를 줄 알고!"(한옥정)

남성 게스트들이 앞자리에 앉은 미모의 여성들에게만 관심을 나타내자 '뒷줄 누님'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여러 게스트가 출연하는 집단 토크쇼에는 재미와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좌석의 법칙'이 숨어 있다.

●뒷줄은 입담 좋은 게스트 차지

최근 토크쇼는 게스트 수를 늘려 집단화하고 있다. 최대한 화제 거리를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주요 포털의 '인기 검색어'는 토크쇼에서 나온 내용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집단 토크쇼인 강심장(SBS)과 세바퀴(MBC) 출연자는 매회 평균 20명 안팎이다. 출연자들은 3, 4층 높이의 계단식 좌석에 나눠 앉는다. 이 자리 배치에는 제작진의 간단하지 않은 계산이 깔려 있다.

가장 앞줄은 '비주얼석'이다. 이 자리들은 화면에 크게,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인기 절정의 스타이거나 비주얼이 우월한 게스트가 차지한다. 소녀시대 유닛그룹 '태티서'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티파니는 1일 '강심장'에 출연해 앞줄 중앙을 차지했다. 3월 컴백한 2AM은 '세바퀴'에 출연해 4명이 줄지어 앞줄에 앉았다.

가장 뒷줄과 양쪽 끝자리 등 화면에서 '잘리기' 쉬운 곳들은 이른바 '입담석'이다. 이곳은 고정 출연자 또는 입담이 뛰어난 게스트들의 몫이다. 언제든지 입심으로 토크를 주도해 카메라를 자기 쪽으로 끌어 올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는 자리다. '강심장'의 붐과 이특, 정주리 김효진 박경림은 게스트를 'ㄷ'자 형으로 감싸 앉아 감초 역할을 한다. '세바퀴' 역시 조형기-김현철-김신영, 지상렬-이경애-김지선-이경실 라인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초대 손님을 줄이는 대신 고정 게스트를 늘려 '입담 라인'을 강화하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2, 3명의 사회자가 전체 출연자를 세세히 챙기기 어렵기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 없이 더 깊고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다. 집단 토크쇼는 아니지만 '해피 투게더'(KBS2)가 김준호 허경환 김원효 등 개그맨들을 보조 출연자로 끌어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운데 좌석은 '리액션석'으로 분류된다. 이 자리는 특정 인물이 화면에 등장할 때 배경으로 등장하기 쉽다.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리액션이 크고 화려한 게스트를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졸거나 딴청을 피우다가 카메라에 적발되기 가장 쉬운 자리도 이곳이다.

●선후배, 친소 관계도 고려해야

모두가 눈에 잘 띄는 첫째 줄을 선호할 것 같지만, 둘째 줄의 가운데 자리도 숨은 특석이다. 리액션만 열심히 하면 카메라를 훨씬 자주 노출될 수 있다. 3월 '강심장'에 출연한 '빅뱅' 승리가 이 자리를 일부러 골라 앉았다.

좌석이 카메라보다 높기 때문에 여성 게스트의 짧은 치마를 고려해 무릎을 덮는 담요나 쿠션도 필수품이다. 치마가 적당히 길면 쿠션, 짧으면 담요를 쓴다. 의상에 따라 담요의 색깔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제작진은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담요를 상비해둔다.

박상혁 '강심장' PD는 "인지도나 스타성이 자리 배치를 판단할 때 중요한 기준이지만 연예계 선배나 나이 많은 분을 앞줄에 우대하기도 한다. 사적으로 친한 게스트들의 경우 가까운 자리에 함께 앉히면 재미있는 토크가 잘 나온다"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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