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강사들 부르는게 값…회당 1000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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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저자의 감성, 직접 보고 듣고 느낀다”
새로운 이벤트로 진화하는 강연 문화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교수의 저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는 2월 중순부터 국내 온·오프라인서점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이 책을 출간한 8.0의 허윤정 기획편집팀장은 “최근 저자가 방한해 대규모 강연회를 한 후 책 판매에 탄력이 붙었다”고 전했다. 이 책은 저자의 와튼스쿨 강연을 추린 것으로 현재 30만 부 이상 팔렸다.

김정운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의 신작 ‘남자의 물건’(21세기북스)은 저자의 TV 특강 ‘특수’를 누리기 위해 출간 시기를 조정했다. 김 교수가 강연자로 나선 SBS ‘지식 나눔 콘서트, 아이 러브 人’이 지난달 5일 밤 12시에 방영됐고 다음 날인 6일 책이 나온 것. 이 책은 종합 베스트셀러 5위권을 유지하며 현재 1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이 두 사례는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강연 열풍이 출판계에 미치는 거대한 영향을 보여준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인기 강연과 베스트셀러 저서가 맞물리는 형국이다. 최근 한 달간 온라인서점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를 보면 1위부터 4위까지가 강연을 기초로 출간된 책이다. 유명 강연자가 썼거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책도 50위 내 16권이다(표 참조). 문화계에서 강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마이크임팩트 등 다양한 강연을 기획하고 강연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전문 에이전시도 생겨났다.

○ 유명 강사 강연료 ‘천정부지’

유명 강사의 강연료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와 김정운 명지대 교수,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 등 특A급 강사는 기업에서 500석 이상 대규모 강연을 할 경우 회당 300만∼500만 원을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반 명사급은 200만 원 내외. 연예인은 1000만 원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500만∼700만 원 선에서 조정한다는 게 업계 인사들의 전언이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임원 등의 소규모 모임은 회당 1000만 원을 넘기도 한다. 이 같은 모임에서 강연했던 한 강사는 “강연료는 ‘부르는 게 값’이고 참석자들이 바로 현금을 모아 준다”며 “신화나 오페라 등 문화예술 강연 수요가 많고 총선과 대선을 앞둔 올해는 정치전문가들에 대한 강연 요청도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공익적 목적의 강연이나 학생 대상, 책 출간을 계기로 하는 강연 등은 실비 정도만 받거나 무료로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외국 석학도 비슷하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번 방한에서 대중 강연의 강연료를 전혀 받지 않았다. 그의 강연료는 최소 1만 달러(약 1200만 원)에서 최대 10만 달러(약 1억2000만 원) 수준이다.

○ 지식+엔터테인먼트로 진화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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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강연은 ‘지식을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한 교육’에 가까웠지만 2010년 전후부터 지식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문화 이벤트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한동헌 마이크임팩트 대표는 “요즘에는 강연 자체가 지식인 동시에 ‘재미있는 놀이’로 인정받고 있다”며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가듯 강연장을 찾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에는 한 달 500건 안팎의 강연 의뢰가 들어온다.

전문가들은 강연 열풍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예산을 들여 강연장을 만들고 다양한 무료 강연을 마련하면서 여건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TED도 영향을 미쳤다.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머리글자를 딴 이 강연회는 온라인을 통해 서비스되며 전 세계에 TED형 강연 바람을 일으켰다. 장준연 삼성전자서비스 사내 교육 담당 과장은 “TED가 대학생과 셀러던트(공부하는 직장인)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젊은이를 대상으로 이와 유사한 형태의 강연이 많이 생겨났고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인기를 끈 각종 ‘토크 콘서트’도 이런 바람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 “좋은 강연자 찾는 기준이 책”

이른바 ‘강연의 시대’에 책은 좋은 강연자를 찾는 기준이 되고 있다. 장 과장은 “논문이나 학술서 외에 대중을 대상으로 자신의 분야에 대한 책을 썼는지, 그 책의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지에 따라 강연자의 함량을 판단한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전문강사나 교수뿐 아니라 기업인 연예인 문화예술인 전업주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책을 통해 자신의 스토리를 정리하면서 강연시장에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출판사 대표는 “10만 부 이상 책을 파는 저자의 경우 보통 인세보다 많은 돈을 강연을 통해 얻는다. 책을 낸 후 연구는 하지 않고 강연만 하러 다니고, 그 내용을 대충 묶어 아류 책을 다시 펴내는 저자도 꽤 많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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