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만이 가능” 한국 공연계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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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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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위적 공연예술축제 ‘페스티벌 봄’ 예술감독 김성희 교수

‘페스티벌 봄’의 김성희 예술감독은 “앞으로 공연예술의 주도권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져올 때 한국이 맨 앞에 설 수 있도록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게 목표”라며 “공연계를 떠나 다양한 인문학 전공자들이 고정 관객이 되어준 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페스티벌 봄’의 김성희 예술감독은 “앞으로 공연예술의 주도권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져올 때 한국이 맨 앞에 설 수 있도록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게 목표”라며 “공연계를 떠나 다양한 인문학 전공자들이 고정 관객이 되어준 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누군가 무용하는 안은미 언니에게 쓴 표현인데 제게도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망치는 기차에 탄 미친년’이라고.”

페스티벌 봄의 예술감독인 김성희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46)는 공연계의 미스터리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피나 바우슈, 얀 파브르, 윌리엄 포사이스, 로메오 카스텔루치, 윌리엄 켄트리지 같은 공연예술계 거목들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공연 기획자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그 예산으론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 사람들 작품을 못 끌고 와요. 김성희 선생이니까 가능하지.”

김 교수는 2007년부터 거의 홀로 세계 공연예술계의 전위적 작품을 20여 편씩 소개하는 ‘페스티벌 봄’을 매년 기획하고 필요한 예산도 마련한다. ‘페스티벌 봄’은 온갖 장르를 융합하는 다원예술 공연 분야 축제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3년 연속 1등의 평가를 받았다. 정부지원금은 이것저것 합쳐도 2억 원이 채 되질 않는다. 나머지 5억여 원은 대체 어떻게 마련하는 걸까.

그 비결을 파헤치기 위해 늘 무대 뒤에 숨어있는 그를 무대 앞으로 끌어냈다.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는 그에게 ‘5년 동안 꽁꽁 숨어있었으니 이제 얼굴을 내밀어도 되지 않겠냐’며.

밝고 쾌활한 그는 다섯 살 때부터 ‘리틀엔젤스’ 무용단원으로 1년의 절반은 해외 순회공연을 다니던 춤꾼이었다. 이화여대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1985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할 정도로 전도유망한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그의 인생은 1990년대 중반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 뒤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 무용계의 무게중심은 테크닉보다 ‘춤의 본질은 무엇인가’와 같은 인문학적 개념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는데 전 춤추는 테크닉 빼곤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엄청난 쇼크로 1년여를 방황하다가 ‘내가 따라잡을 순 없더라도 이런 흐름을 국내에 알리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뉴욕대 예술경영대학원에 들어갔죠. 휴∼, 춤춘다고 산수도 제대로 못 배운 년이 영어로 수학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2000년 귀국한 그는 LG아트센터의 초청공연 작품을 추천하면서 공연 큐레이터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지금의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국제현대무용제(MODAFE)의 토대를 닦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좌충우돌하다가 ‘미운털’도 많이 박히게 됐다. 절치부심 끝에 그가 홀로서기 카드로 준비한 게 ‘페스티벌 봄’이었다.

“컨템퍼러리(동시대) 예술은 영어로 already와 yet 사이에 존재하는 예술이죠. 이미 여기에 존재하는 예술과 다르지만 아직 도착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예술. 그러니 당연히 주류가 될 수 없고 관객이 많지 않으니 돈이 될 수 없죠. 예술경영을 전공하긴 했지만 제가 돈 벌려고 춤을 포기한 건 아니니까요.”

자 이제 비결을 들을 차례다. 우선 그 많은 거장들을 어떻게 꼬드길까. “제 미모가 한몫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전혀 아니에요. 그 사람들도 다 알거든요. 이걸로 돈 못 번다는 거. 열정만 보여주면 동지애 같은 게 절로 생기죠.” 어, 그런가? 그럼 그 많은 돈은 다 어떻게 끌어 모을까. “국내외 예술지원금의 퍼즐 맞추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국내뿐 아니라 초청국가의 예술지원금도 당겨 오고, 국내 공연장과 공동기획도 추진하고…. 아, 저 작품 꼭 보여주고 싶다 싶으면 온갖 구멍을 다 쑤시고 다니는 거죠.”

결국 답은 하나였다. 한국이 세계 공연예술의 첨단에서 뒤처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 열정. 그 열정으로 자비까지 들여가며 1년의 두 달을 꼬박 해외에서 보내는 그의 여섯 번째 상차림(11개국 22개 작품)이 3월 22일∼4월 18일 서울 곳곳에서 펼쳐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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