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외진 소극장… 영혼을 울리는 구도의 승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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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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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진 성균소극장 대표,전통춤 매료… 늦깎이 몰입, 명지대서 석박사과정 마쳐
무용전용 극장에 승부수 “1년 365일 상설공연 꿈”

이철진 성균소극장 대표가 추는 한영숙류 승무는 선이 굵고 남성적이다. 40여 분의 독무는 체력 소모가 심해 끝나고 나면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탈진할 지경이 된다. 그래도 그는 “매일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철진 성균소극장 대표가 추는 한영숙류 승무는 선이 굵고 남성적이다. 40여 분의 독무는 체력 소모가 심해 끝나고 나면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탈진할 지경이 된다. 그래도 그는 “매일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해 12월 27일 저녁,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부근 대학로는 연말 공연을 즐기려는 젊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서울연극센터 옆으로 난 골목을 지나 성균관대 입구 쪽 좁은 길로 들어서자 마치 다른 동네에 온 것처럼 한산했다. 성균소극장은 이 골목 한구석에 있다.

이날 이곳에서 ‘이철진의 화요 승무이야기’ 2011년 마지막 공연이 열렸다. 지하에 있는 공연장은 70석 작은 규모이지만 한산했다. 그러나 공연은 기대를 뛰어넘었다. 어린 시절 조지훈의 시 ‘승무’를 통해 어렴풋이 가졌던 이미지가 전부인, 그 춤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비현실적으로 긴 장삼 자락을 휘날리며 40분간 이어진 독무는 고통과 무의미로 가득 찬 삶 속에서 온몸으로 부딪치고, 좌절하고, 껴안고, 일어서는 구도자의 일생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쿵쿵, 법고(절에서 법식을 치를 때 치는 큰북)를 때리는 소리에 관객의 심장도 같이 울렸다.

교과서 속 시와 사전을 통해서나 접했던 이 잊혀진 춤을 대중 앞에 다시 내놓은 무용가는 이철진 성균소극장 대표(45)다.

“한국에서 전통춤은 죽었습니다. 다시 살리려면 대중과 만나야죠. 소극장 무대야말로 전통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입니다.”

전통 춤을 장기 공연하는 곳은 민간극장으로는 이 소극장이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 ‘전통 춤이 대중과 만나야 한다’는 당위와 ‘춤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무용인의 필요가 더해져 시작된 실험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가 무용인의 길을 걷게 된 건 우연이었다. 우울증을 앓던 젊은 시절 우연히 접하게 된 전통 춤에 빠져들었다. 뒤늦게 서울예대 무용과에 입학했고, 1989년 무용가 이애주 씨(중요 무형문화재 27호 승무 보유자) 문하로 들어가 아침부터 밤까지 승무와 살풀이, 태평무만 추었다. 그리고 춤을 통해 심연처럼 깊고 캄캄했던 우울증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춤이 주는 개인적인 체험에만 매달리다 밖으로 눈을 돌리자 무용인의 열악한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1년에 364일 연습하고 하루 공연하는 게 대부분의 전통 무용인의 모습이었다. 직업으로서는 전통 춤에서 전혀 비전을 볼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애주 씨 문하에서 나온 그는 명지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이론을 공부했고 박사학위를 마친 이듬해인 2007년 창고처럼 쓰이던 지금의 이 공간을 빌려 공연장으로 꾸민 뒤 본격적인 소극장 공연을 시작했다.

대학로의 허름한 소극장 무대에서 전통 춤을 장기 공연한다는 생각은 당시 생소했고 무용인들도 “그런 무대에는 서고 싶지 않다”며 외면했다. 결국 이 대표가 ‘보름간의 승무여행’이라는 제목의 기획 공연을 만들어 보름 동안 매일 무대에서 춤을 췄다.

“주변에선 ‘누가 승무를 보러 가겠냐’며 무모하다고 말렸죠. 하지만 전 충분히 관객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단 몇 명의 관객을 두고 공연할 때도 많았지만 점점 사람이 많아져 70석을 다 채우는 경우도 있었다. 이 공연은 2009년 ‘30일간의 승무 이야기’, 2010년 ‘100일간의 승무 이야기’, 지난해 초 ‘천년 승무이야기’, 그리고 지금의 ‘화요 승무이야기’로 이어졌다.

춤의 잠재 관객층이 있음을 확신한 그는 다양한 기획 공연을 시도했고 흥행작도 여럿 만들었다. 동갑인 1세대 발레 스타 이원국 씨와 의기투합해 마련한 ‘이원국의 월요 발레이야기’는 2010년부터 시작해 무기한 공연을 하며 꾸준히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8주 동안 서울교방 모임과 함께 매주 수요일 내용을 달리하며 진행한 ‘서울교방 춤꾼전’은 객석이 모자라 공연 전마다 보조석을 마련하느라 스태프가 애를 먹었다. 지난해 인근 소극장인 ‘꿈꾸는 공작소’에서 진행한 ‘2인무 페스티벌’도 흥행에 성공했다.

성균소극장이 전통 춤의 대중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이곳을 전통예술전용공간으로 지정했다.

올해 활동의 폭을 더욱 넓히기 위해 사단법인 등록과 해외공연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 대표는 “성균소극장이 전통 무용인들 사이에서 서고 싶은 무대로 인식되고 있는 게 큰 성과지만 이제 시작이다. 1년에 365일 공연하는 것이 목표다. 해외 진출도 시도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02-3675-3336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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