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청동기시대 청동기의 존재 미약… ‘無文시대’로 개명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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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최종규 씨 주장

“청동기시대란 용어는 적절치 않다. 무문(無文)토기시대 또는 무문시대로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선사시대를 구분하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이 가운데 청동기시대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는 이색적인 주장이 나왔다.

고고학자인 최종규 삼강문화재연구원장은 최근 ‘고고학탐구’ 10호에 ‘한국에 있어 청동기시대라는 용어의 적용에 대하여’라는 글을 발표하며 이 같은 견해를 내놓았다.

최 원장 견해의 핵심은 청동기라는 용어가 이른바 청동기시대의 특징과 의미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우선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나라에서 청동기의 존재 그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 인민의 생활에 어떤 이익을 가져왔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청동기는 이기(利器)의 재질에만 중점을 둔 것인데, 청동기는 사실 우리나라 선사시대에서 극히 부분적이고 특수한 현상에 불과했다. 이 청동기가 우리나라의 고고학적 상황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미미하다.”

청동기시대의 청동기 사용은 부분적인 특수 현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청동기시대의 여러 특징을 검토한 뒤 가장 보편적인 특징을 찾아냈다.

“당시를 그 이전 사회와 구분해 주는 특징으로는 마제석기의 사용, 해안에서 내륙으로의 진출, 취락의 발전, 공동묘지의 출현, 방어 취락의 등장, 청동기의 등장 등 여럿이 있지만 가장 큰 특징은 인구의 증가다. 인구 증가가 가능한 것은 식량 생산 때문이었다. 이러한 농경이 바로 청동기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특징이다.”

이어 최 원장은 농경과 관련된 토기 유물에 주목했다.

“청동기시대의 대표 유물인 무문토기(무늬없는 토기)는 식량 생산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의 농경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토기에 주목해야 한다.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적합한 용어를 찾기 전까지 잠정적으로 무문토기시대 또는 무문시대로 부르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무문시대라는 어휘가 거부감을 준다면 농경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의 이름을 따서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도 청동기시대에 대한 고민이 있어왔다. 청동 유물이 실제로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동기시대라고 쓰는 것은 우리 고대사의 자부심을 강조하기 위한 민족주의적 성향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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