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아리아도 연기도, 과연 호세 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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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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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역 쇼베 매력도 활화산, 클라이맥스 무용은 아쉬움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무대 ★★★☆ 연출 ★★★☆ 음악 ★★★★☆ 무용 ★★☆

“당신의 비밀을 함께 나누고 싶다”며 앙탈 부리는 델릴라(제랄딘 쇼베·왼쪽)에게 빠져들고 마는 삼손(호세 쿠라). 베세토오페라단 제공
“당신의 비밀을 함께 나누고 싶다”며 앙탈 부리는 델릴라(제랄딘 쇼베·왼쪽)에게 빠져들고 마는 삼손(호세 쿠라). 베세토오페라단 제공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는 한국 무대에 자주 오르진 않지만 ‘카르멘’과 함께 메조소프라노가 주역을 맡는 대표적인 오페라다. 테너와 소프라노의 고음의 기교로 화려함을 과시하기보다는 저음역에 중심을 두고 서정성을 부각하는 것이 특징이다. 삼손과 그를 유혹하는 블레셋 여인 델릴라를 중심으로 신과 인간, 선과 악, 믿음과 배신의 대립구도를 펼치고 있다.

‘빅3 테너’의 뒤를 이은 ‘제4의 테너’로 각광받아온 호세 쿠라는 건재했다. 2004년 내한 때 ‘카르멘’에서 과장되고 드라마틱한 돈호세를 연기한 그는 이번에 삼손으로 출연해 내밀한 연기와 절제된 감정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다. 긴장을 자아내는 고음역도, 감탄할 만한 화려한 기교도 없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배역이지만 긴 호흡으로 극을 이끄는 쿠라의 연기는 오페라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유혹 앞에 갈등하는 2막, 탄식과 자책으로 기도하는 3막, 중간 중간 돋보였던 거침없는 고음까지 집중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가창력과 표현력이 훌륭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캐릭터 설정 및 관객과 소통하는 면에서 메조소프라노 제랄딘 쇼베에게 다소 밀린 감도 들었다.

거구인 쿠라와 충분히 어울릴 만큼 큰 키에 우아하고 매혹적인 연기력까지 갖춘 쇼베는 2막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에서 삼손은 물론이고 객석까지 사로잡았다. 저음역대에서 진성(眞聲)을 많이 섞으면 표현력은 좋아져도 음색이 거칠어지는데, 진성과 가성을 적절히 사용하고 고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팜파탈의 끼를 발산한 점이 절묘했다.

제사장 역의 바리톤 멜리 테프레메츠는 부분적으로 탄력이 떨어진 듯한 음색은 아쉬웠지만 무대장악력이 훌륭했다. 요켐 호흐슈텐바흐가 지휘한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막에서 관악과 현악의 앙상블이 깨지기도 했지만 2막부터 극중 인물의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타일 좋은 생상스’를 들려줬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변화를 꾀하는 무대가 많은 요즘 크게 고민하지 않은 ‘클래시컬한’ 무대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파괴적인 클라이맥스를 보여줘야 하는 3막에서 음악과 함께 내러티브를 이끌어야 했던 무용은 실망스러웠다. 프랑스 오페라는 발레만으로도 상당 부분 드라마를 진행하기 때문에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무용의 긴밀한 호흡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오페라는 극적인 표현력이 부족했던 3막에서 그만 이 부분의 불일치 때문에 맥이 빠졌다. 특히 난데없이 등장한 남자 무희들의 ‘웨이브 댄스’를 연상시키는 춤은 긴장감 넘치던 오페라를 삽시간에 학예회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연출에 있어서 전체적인 균형의 배려가 아쉬웠다.

이지영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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