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표현은 달라도 공통의 언어…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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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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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동아시아 현대미술전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국은 근대 이후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을 겪으면서 서구를 따라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의 이전 개관전으로 열리는 ‘그리움: 동아시아 현대미술전’은 빠르게 달려가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성찰하는 전시다. 위로부터 ① 학창시절 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던 정연두 씨가 야외생활을 재현해 찍은 ‘사춘기’ 시리즈. ② 기념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의 어제와 오늘을 추적해 대비시킨 중국 작가하이보의 ‘They’ 연작. ③ 어머니의 소지품을 통해 현대여성의 초상화를 완성한 일본 작가 이시우치 미야코의 ‘어머니’. 한국국제교류재단 제공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3국은 근대 이후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을 겪으면서 서구를 따라가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의 이전 개관전으로 열리는 ‘그리움: 동아시아 현대미술전’은 빠르게 달려가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성찰하는 전시다. 위로부터 ① 학창시절 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던 정연두 씨가 야외생활을 재현해 찍은 ‘사춘기’ 시리즈. ② 기념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의 어제와 오늘을 추적해 대비시킨 중국 작가하이보의 ‘They’ 연작. ③ 어머니의 소지품을 통해 현대여성의 초상화를 완성한 일본 작가 이시우치 미야코의 ‘어머니’. 한국국제교류재단 제공

벽면에 나란히 부착된 흑백사진 두 장에서 세월의 흐름을 읽는다. 왼쪽엔 젊은 군인 다섯 명이 1974년 찍은 단체사진이, 오른쪽 사진에선 빈 의자와 함께 중년 남자 한 명이 보인다. 중국 작가 하이보의 ‘They’ 연작은 단체사진을 실마리로 삼아 사진 속 인물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준다. 그는 평범한 기념사진 속 인물을 추적해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위치에 오도록 사진을 다시 찍었다. 중간 중간 빈자리에서 가버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엿보인다. 일본 작가 이사우치 미야코의 ‘어머니’ 연작에도 애잔함이 스며 있다. 낡은 구두, 사용한 흔적이 남은 빨간 립스틱, 주인 잃은 의치가 사진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소지품을 클로즈업한 사진을 모아 한 현대여성의 초상화를 재구성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병국)이 서울 중구 수하동으로 문화센터(미래에셋 센터원빌딩 서관 2층)를 옮긴 뒤 처음 여는 ‘그리움, 동아시아 현대미술’전에서 만난 작업이다. 이 전시는 기억과 시간을 한중일의 현대미술을 통해 더듬는 자리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일본 모리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중국현대미술상(CCAA)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김선희 씨가 기획했다.

전시에는 근대 이후 급변하는 사회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겪은 3개국 작가들이 4명씩 참여했다. 미술애호가에겐 문화적 유사성을 공유하면서도 각기 다른 한중일 미술의 특징을 살펴볼 기회다. 생경한 메시지보다 정서적으로 공감할 만한 작품이 많아 일반 관객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27일까지. 02-2151-6520

전시의 첫 머리엔 기이한 흑백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해묵은 사진 같은데 이미지는 현대 서울의 풍경이다. 북촌의 좁은 골목길이나 청계천에서 사람들이 바짝 맞대 서서 몸으로 길이를 재는 모습이다. 대만 작가 투웨이청은 6월 말 2주간 시내를 답사하면서 서울의 ‘파편’을 촬영해 사진과 오브제작업을 완성했다. 그의 ‘이미지 은행’도 흥미롭다. 한약방에서 씀직한 약재서랍 속에는 서울을 찍은 사진이 들어 있다. 이 사진을 들고 실제 배경이 된 곳을 찾아내 ‘인증 샷’을 찍어 오면 전시 중인 소품액자를 선착순으로 주는 게임이다. 관객이 그동안 스쳐 지나온 공간을 세세히 바라보고 새롭게 만나도록 유도한 작업이다.

학창 시절 등산을 좋아했던 정연두 씨는 사진 시리즈 ‘사춘기’를 통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캠프파이어를 하거나 산을 오르는 사람들, 그리운 이미지들이 비밀스러운 여행의 통로 역할을 한다. 일본 작가 미즈코시 가에코 씨는 바람에 흔들리는 흰 커튼과 식탁 위의 꽃 등이 나오는 영상작품을 선보였다. 실제와 허구를 뒤섞은 이미지들이 다큐의 개념과 가능성에 질문을 던진다.

울긋불긋한 꽃밭에서 사슴, 얼룩말과 함께한 소녀, 수묵화 같은 느낌의 호수에서 노 젓는 뱃사공. 중국 화가 돤젠위의 그림에는 풍부한 향토성과 문학적 상상력이 녹아 있어 독특한 울림을 남긴다. 재독 화가 송현숙 씨는 오래전 떠나온 고향의 느낌을 기억에서 길어 올린 서정적 회화에서 포근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본 작가 사와다 도모코 씨의 ‘학창시절’ 연작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똑같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의 단체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수십 명의 얼굴이 다 똑같다. 작가가 일일이 다른 모습으로 분장해 합성한 사진이다.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작가는 그 시절로 돌아가 ‘수많은 나’이자 ‘내가 아닌 나’의 정체성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과거를 향한 다양한 시선은 단순한 복고 취미가 아니라 가끔은 뒤도 바라보면서 가자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김선희 씨는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좋은 것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며 “나는 과거의 모자이크인 만큼 나를 알기 위해서라도 지나온 시간을 들춰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간다움을 담은 작품들이 그리움의 가치를 새삼 일깨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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