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나눔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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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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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찾기-박현숙 그림 제공 포털아트
행복찾기-박현숙 그림 제공 포털아트
나눔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의 쓰임을 보면 세상이 참 아름답고 넉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누고자 하는 곳,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많으니 세상이 공평하고 차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눔이라는 말이 단지 형식적인 나눔에 그치고, 행사를 위한 나눔에 그치고, 과시를 위한 나눔에 그침으로써 본질을 나누지 못한 채 겉치레 나눔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크고 작은 행사, 심지어 광고 문안에까지 나눔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여 진정성보다 상투성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올해 마흔 둘인 조 과장은 나눔이라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입니다. 나눔이라는 말이 넘쳐나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이렇게 흔한데 세상이 왜 이 모양인가, 그는 술만 들어가면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나눔을 행하는 사람의 넉넉한 표정을 보노라면 나눔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죄인이라도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언성을 높입니다. 자신도 나누고 싶지만 박봉에 아이들 교육비, 생활비, 온갖 공과금까지 찢기고 나면 참으로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나눌 건더기가 없다고 그는 울상을 짓곤 합니다. 그런 조 과장에게 누군가 이런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한 달 뒤에 베풀 잔치를 위해 소젖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소젖을 한 달 동안 보관하는 일이 어려워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낸 그는 한 달 동안 소젖을 짜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에게서 새끼를 떼어내 젖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소젖을 짜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가 잔치 당일에 한꺼번에 짤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윽고 잔치 당일이 되어 동네사람들이 집으로 모여들었을 때 그는 소를 끌고 와 즉석에서 젖을 짜 사람들에게 따끈한 젖을 나누어 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소에게서는 단 한 방울의 젖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젖을 짜지 않고 새끼에게 먹이지도 않아 완전히 말라버린 때문이었습니다.

조 과장이 들은 얘기는 불교의 비유경전인 ‘백유경(白喩經)’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그것을 들은 조 과장은 도대체 그 얘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들려준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물을 많이 모은 뒤에 세상 사람과 나누겠다는 생각은 단지 욕심이고, 가진 것이 없어 나누지 못한다는 말은 한갓 핑계입니다. 자신이 가진 한도에서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 나누려는 마음만 있었다면 소 주인은 소젖을 마르게 하지 않고 날마다 마을 사람과 나눌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꺼번에 온 세상에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는 결국 아무것도 나누지 못한 채 소젖이 말라붙게 만든 것입니다.”

나눔의 근본은 물질이기 이전에 마음입니다. 나눔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나눔을 단지 물질적 교환행위로 보기 때문입니다. 나눔을 베푸는 사람이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의식한다면 그것은 행하지 않느니만 못한 사회적 차별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옹졸하고 옹색한 마음으로는 억만금을 가지고도 나눌 수 없는 것,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느 곳에서나 무궁무진하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 곧 나눔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마음으로 나누지 못하면 아무것도 나눌 수 없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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