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생각하라, 동방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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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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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과 여인, 김종하, 그림 제공 포털아트
등불과 여인, 김종하, 그림 제공 포털아트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인도 시인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입니다. 이 시는 1924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주요한(朱耀翰)의 번역으로 실렸습니다. 1913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타고르가 192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동아일보 기자가 찾아가 조선 방문을 요청했으나 일정상 방문할 수 없다며 써 준 시가 바로 ‘동방의 등불’이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처음 발표했을 때는 앞의 4행이 전문이었으나 나중에 노벨상 수상작인 시집 ‘기탄잘리’에 실릴 때 후반부가 덧붙여져 의미와 주제가 더 보강되었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지식은 자유롭고/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타고르의 대표시집 ‘기탄잘리’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항거하는 인도인을 위해 쓴 것입니다. 그가 ‘동방의 등불’을 ‘기탄잘리’에 수록할 때 후반을 덧붙인 것은 일제 식민치하에서 신음하던 한국의 처지를 살피며 동병상련의 정서를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3·1운동의 실패로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던 한국민에게 타고르는 깊은 예지와 통찰의 정서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나아가 웅지를 펼칠 수 있는 기개를 고취하고 있습니다.

1916년 일본을 처음 방문한 자리에서 타고르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에 일침을 가하며 “일본이 다른 민족에게 입힌 상처로 일본 스스로가 고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며, 일본이 주변에 뿌린 적의의 씨앗은 일본에 대한 경계의 장벽으로 자라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역사의 흐름은 타고르의 예언이 실현되게 하여 오늘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깊은 자성의 시간을 갖게 합니다.

21세기로 접어든 이후 한국의 글로벌 약진은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상적 확장성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인터넷의 범용화로 한류 문화 콘텐츠는 이미 ‘동방의 등불’ 역할을 선도적으로 수행하여 국가와 지역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의 지구촌 공동체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인구 4만 명의 소도시 강원 평창이 12년 만에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면서 ‘동방의 등불’은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의 진로를 밝히는 지향성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등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하며 공존과 공유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등불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길라잡이입니다. 거기에는 심지가 있고 기름이 있고 타오르는 불꽃이 있습니다. 내부의 불순물을 태워 세상을 밝힌다는 건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 고독한 승화를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릇된 자체 발광으로 스스로 우쭐거리며 도덕성을 상실한다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등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세상을 밝힌다는 점에서 등불은 빛을 지향하는 순수성을 지녀야 합니다. 더 멀리 더 오래가는 지혜, 우리 모두 오래오래 꺼지지 않는 동방의 등불이 되어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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