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ng]“고객 몸짓만 보고도 스시 취향 알수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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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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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리얼팰리스 일본식당 ‘만요’ 권오준 셰프

1주토로(참치 중간뱃살)스시 2농어껍질 스시 3엔가와(광어지느러미살 구이)스시 4오토로 아부리(참치 뱃살구이)스시 5학꽁치 스시
1주토로(참치 중간뱃살)스시 2농어껍질 스시 3엔가와(광어지느러미살 구이)스시 4오토로 아부리(참치 뱃살구이)스시 5학꽁치 스시
권오준 셰프는 스시 가이세키를
‘커뮤니케이션’이라 정의했다.
손님과 대화하고 표정과 안색까지 살피며
기호와 취향에 맞춰 스시를 내놓기
때문이다. 정통 스시 가이세키에선
그릇도 젓가락도 쓰지 않는다.
손으로 만들어 맨 식탁위에 올려진
스시를 맨 손으로 집어 먹는다.
식탁 주변에는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흐르게 해놓았다. 진정한 맛은
이렇게 손에서 손으로 눈에서 눈으로
전달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권오준 셰프는 스시 가이세키를 ‘커뮤니케이션’이라 정의했다. 손님과 대화하고 표정과 안색까지 살피며 기호와 취향에 맞춰 스시를 내놓기 때문이다. 정통 스시 가이세키에선 그릇도 젓가락도 쓰지 않는다. 손으로 만들어 맨 식탁위에 올려진 스시를 맨 손으로 집어 먹는다. 식탁 주변에는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흐르게 해놓았다. 진정한 맛은 이렇게 손에서 손으로 눈에서 눈으로 전달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맛있는 요리를 맛본 적이 있는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임피리얼팰리스호텔 일식당 ‘만요(万葉)’의 권오준 셰프(47)는 만 서른에 맛본 음식 하나가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공무원 생활을 하던 그였다. “우연히 부산의 한 호텔에서 스시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그때 바로 결심했어요. 내가 할 일이 이것이구나. 본고장에 가서 장인이 되자.”

최고의 맛 찾아 무작정 떠난 길

그해 5월 결혼을 한 뒤 9월 바로 짐을 싸 일본 도쿄로 떠났다. 일본어 한마디 못하고 요리의 기초도 몰랐다. 이보다 무모할 수 있을까. “이름 석 자 정도만 한자로 적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력서를 한자로 써 아사쿠사의 유명한 스시 거리로 갔죠.”

전통 있어 보이는 식당에 무작정 들어가 이력서를 내밀었다. 손짓발짓해가며 ‘여기서 일하고 싶다. 설거지라도 하겠다’고 했지만 대답은 당연히 ‘노(NO)’.

“사흘 내리 쫓겨나고 비가 억수로 오던 나흘째. 주인 할머니가 장난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내일부터 일하러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취업한 곳이 108년 전통의 ‘스시하츠(壽司初)’였다. 월급도 없이 완전 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화장실 청소와 설거지, 그리고 생선 잡고 다듬는 법부터 어깨너머로 배웠다.

5년째 되던 어느 날. 주방장이 ‘카운터’로 그를 불렀다. “이치닌마에(一人前)라고 카운터에서 직접 스시를 만드는 것이죠. 보통 일본인들도 10년차는 돼야 이치닌마에가 되는데 엄청 빨랐죠.”

그는 일본인 동료보다 두 배로 노력했다. 가장 일찍 출근해 청소하고 주방장과 함께 쓰키지 시장에 가 장을 봤다. 7년차에는 ‘넘버2’인 부주방장까지 올랐다. 일본의 주요 스시집에서 외국인이 부주방장에 오른 예는 거의 없다.

2002년 권 씨는 ‘스시쇼’ 계열의 ‘스시쇼 사이토’라는 식당으로 옮겼다. 미슐랭 별 세 개를 받은 이곳은 스시 가이세키(會席)가 3만 엔(약 40만 원)부터 시작하는 최고급 식당. 가이세키는 스시와 함께 회와 튀김 찜 초무침 식사까지 곁들이는 코스요리로 일본에서도 최고급 메뉴로 꼽힌다.

이후 일본 최대 규모의 스시 레스토랑 체인 ‘스시잔마이’에서 요리사 양성을 맡던 그는 지난해 임피리얼팰리스호텔의 제안을 받고 귀국을 결심했다.

그가 ‘만요’에서 선보이는 스시 가이세키에는 총 15∼20가지의 요리가 나온다. 복어껍질젤리, 보탄새우, 줄전갱이, 게살튀김, 성게알덮밥 등 많은 재료를 쓰키지 시장에서 공수해 왔으나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에는 국산으로 대부분 바꿨다. 한 번에 5명 정도의 손님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약은 필수. 이미 모기업 회장 등 VIP들도 자주 찾는 명소가 됐다.

요리는 ‘커뮤니케이션’

명품요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가장 기본은 좋은 생선을 고르는 것이지요. 쓰키지를 매일 쫓아다니며 배운 것도 바로 그거예요. 똑같이 보여도 어떤 생선이 더 신선한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경험이 필요하죠.”

다음은 계절에 맞춘 생선마다 절이고 졸이고, 국 끓이고 각종 요리법을 배워야 한다. 익혀야 할 생선 종류는 50∼60가지. 밥도 중요하다. “스시의 초밥은 쌀을 뭉칠 때 그 안에 적당한 공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밥알 하나하나가 초를 먹을 수 있게 해야죠.”

하지만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그는 꼽는다.

“가이세키는 손님에 따라 음식이 매번 다르게 나옵니다. 등푸른 생선을 싫어하는 손님에게는 그걸 피해서 고객에게 가장 좋은 요리를 내놓지요. 요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고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고객의 표정과 몸 상태까지 살핍니다. 제가 만든 스시를 먹고 고객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볼 때 ‘내 일이 헛되지 않구나’라고 보람을 느낍니다. 말할 수 없이 행복하지요.”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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