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못다핀 예술가의 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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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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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故 권진규 재조명 연극 ‘응시’ 오늘부터

연극 ‘응시’는 평생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 예술세계를 추구했던 조각가 권진규의 삶과 예술을 무대로 불러내타협하며 살아온 평범한 소시민준태의 삶과 대조시킨다. 극단 컬티즌 제공
연극 ‘응시’는 평생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 예술세계를 추구했던 조각가 권진규의 삶과 예술을 무대로 불러내타협하며 살아온 평범한 소시민준태의 삶과 대조시킨다. 극단 컬티즌 제공
‘인생은 공(空), 파멸. 거사 오후 6시.’

짧은 유서를 남기고 51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1922∼1973).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모티프로 한 연극 ‘응시’가 12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권진규는 1948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사시노미술대에서 조각을 전공하며 일본에선 크게 촉망받았지만 1959년 귀국한 뒤 국내 미술계에선 인정을 받지 못하고 기구한 삶을 살다 간 인물. 흙을 빚어 굽는 테라코타와 종이에 옻칠을 해 만드는 건칠(乾漆)이라는 독자적 기법으로 절제된 사실주의 기법의 인물상을 빚었는데 당시 추상주의 조각이 득세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됐다. 결국 생활고와 외로움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었다.

그런 그의 예술세계가 인정받은 것은 사후의 일이다. 일본 무사시노미술대는 2009년 개교 80주년을 맞아 권진규를 졸업생 중 예술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로 선정했다. 그해 도쿄국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미술대에서는 권진규 전 작품 140여 점을 모은 전시회가 열렸다. 국내 미술계에서도 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다.

‘덕혜 옹주’ ‘나, 김수임’ ‘나운규―꿈의 아리랑’ ‘나는 너다’(안중근) 등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을 여럿 써온 작가 정복근 씨는 이번 연극 ‘응시’에서 평생 세상과 불화했던 권진규를 영혼으로 살려내 소시민 준태와 만나게 한다. 평생 세상과 타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도 희미해진 준태의 삶을 권진규의 삶과 대비시키면서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의 잃어버린 정체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연극은 권진규의 작업실이자 목을 매 생을 마감한 공간이기도 한 서울 성북구 동선동의 허름한 아틀리에를 무대에 살려냈다. 서울 강남에 사는 중산층 준태가 정년퇴직 뒤 어릴 때 살던 동네로 돌아와 자신이 자주 놀러 가기도 했던 한 조각가의, 지금은 폐가가 된 작업실을 거처로 삼으면서 그 조각가의 영혼과 만난다는 설정이다.

‘유다의 키스’ ‘마라, 사드’ ‘이오카스테’ 등 묵직한 작품을 소화해온 연출가 박정희 씨가 연출을 맡았고 ‘이호재 사단’으로 불리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준태는 이호재 씨, 준태의 어릴 적 친구 형우는 전무송 씨, 준태의 부인 민지는 윤소정 씨가 맡는다. 권진규 역으론 이명호 씨가, 그 아내 일본인 아내 도모 역으론 박윤정 씨가 출연한다. 15일까지. 3만∼5만 원. 02-765-5476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조각가 권진규는 한국 근대조각의 개척자로 꼽힌다. 프랑스 조각가 부르델의 영향을 받아 ‘지원의 상’ 등 구도자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인물상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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