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40분 동안 직접 체험하는 40년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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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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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탈출 신개념 연극 ‘헤테로토피아’
공간 활용★★★★☆ 연출★★★★

3일 오후 서울 을지로와 청계천 일원에서 공연된 ‘헤테로토피아’. 40여 분의 여정을 마친 관객들이 밴
드가 대기한 세운상가 옥상에 들어서고 있다. 페스티벌 봄 제공
3일 오후 서울 을지로와 청계천 일원에서 공연된 ‘헤테로토피아’. 40여 분의 여정을 마친 관객들이 밴 드가 대기한 세운상가 옥상에 들어서고 있다. 페스티벌 봄 제공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와 을지다방으로 오시오.’

3일 오후 1∼5시 서울 도심에서 펼쳐진 새 개념 연극 ‘헤테로토피아’(서현석 작, 연출)를 보려는 관객에게 주어진 지령이다. 을지다방 앞으로 가면 번호표가 주어지고 2층 옛날 다방으로 안내된다.

다방 안엔 다음 지령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테이블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있다. 14인치 흑백 TV에선 육영수 여사가 참석한 세운상가 완공식 뉴스 화면이 흘러나온다. 탁자 위에는 세운상가 건립계획에 대한 신문기사와 이를 건축한 김수근 씨 인터뷰 기사를 짜깁기한 ‘세운일보’란 정체불명의 신문이 놓여 있다. 신문을 읽고 있을 때 옛날 옷차림의 ‘다방 레지’가 다가와 묻는다. “모과차와 쌍화차 중에 뭘 드시겠어요?”

차를 주문하면 레지가 이미테이션 ‘가짜 차’와 이어폰이 꽂힌 소형 오디오플레이어를 배달한다. 따르릉 전화가 울리고 레지가 관객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한다. 전화를 받은 뒤 오디오플레이어에 준비된 테이프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오래된 미래’로의 나 홀로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관객은 테이프의 지시나 화살표를 따라 일요일 한적한 을지로 공구상가가 늘어선 허름한 골목을 헤집고 다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주는 명함이나 손짓을 따라 김수근과 그가 1968년 건축한 세운상가에 얽힌 이야기와 공간을 따라가게 된다.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연출된 ‘가짜’인지 의문이 들 즈음 관객은 김수근이 ‘미래의 유토피아’로 꿈꿨던 세운상가가 요즘 각광받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의 원형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쯤 8층으로 된 세운상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어릿광대 복장의 노인을 만난다. 노인은 오디오플레이어 속 테이프를 바꿔주면서 옥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다. 심벌즈 소리가 요란한 환희의 찬가를 들으며, 옥상에 선 순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브라스밴드 차림의 소녀들을 만나게 된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360도 탁 트인 서울의 풍경이 들어온다. 김수근이 ‘서울이란 바다에 떠 있는 배’로 기획했던 세운상가와 그 주변 지대가 현대적 마천루 숲 그늘에 가려진 ‘초라한 근대’로 부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40여 분의 짧은 시간 동안 40여 년이 압축된 시간여행을 펼친 것이다. 헤테로토피아는 ‘또 다른 유토피아’를 뜻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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