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는 나야” 17세 소년의 성장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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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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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을 위로해줘/은희경 지음/492쪽·1만3000원·문학동네

은희경 씨는 “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에 던져진 고독한 떠돌이 소년이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은희경 씨는 “우리 모두는 낯선 우주에 던져진 고독한 떠돌이 소년이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은희경 씨(51)의 새 소설 주인공이 17세 소년이라는 소식에 그의 1995년작 ‘새의 선물’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출세작이 된 ‘새의 선물’의 주인공은 냉소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12세 소녀였다. 15년 뒤 은희경 씨 소설에 등장한 소년은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줄까. 작가 자신은 이 의문에 대해 “‘새의 선물’이 레이스 커튼을 걷어내고 세상을 강하게 볼 수 있도록 독(毒)을 넣은 이야기였다면, ‘소년을 위로해줘’는 살면서 너무 경직된 것을 풀어주고 세상을 유연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근육이완제 같은 이야기”라고 밝혔다. 과연,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선 온기가 풍겨난다. ‘쿨’한 듯, 무심한 듯한 말들을 날리지만 따뜻하고 속 깊은 마음 씀씀이가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아마도 작가의 세상살이 경험이 녹아들었을 이 다사로움은 17세 소년이 응당 가지고 있을 설익은 격렬함과 충돌하지만, 이렇게 부딪치는 지점들로 인해 소설은 변별점을 갖는다.

소설은 이혼한 엄마와 둘이서 살아가는 소년 연우의 이야기를 담았다. 스스로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소심한 소년은 태수라는 친구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힙합 음악을 접하게 된다. 소설에서 G-그리핀이라는 가수의 곡으로 나오고, 실제로는 힙합 가수 키비의 노래인 ‘소년을 위로해줘’다. ‘습관적으로 모든 일들에 익숙한 척 가슴을 펴지만/그 속에서 곪은 상처는 아주 천천히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어/우리는 진짜보다 더 강한 척해야 하므로.’

연우는 친구 태수와 그의 동생 마리와 우정을 나누고, 동급생 채영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함께하는 친구들과 더불어 연우가 매료된 힙합 음악의 강렬한 혁명성이 그를 변화시킨다. “교과서에서는 음악의 세 요소를 리듬, 선율, 화성이라고 가르치지만, 아홉 명이 뛰는 야구에서 투수가 중요하듯이 음악에서 선율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힙합은 선율에 의존하지 않는다. 가장 막강한 선율을 배제해버린 채 음악의 완성을 추구하는 배짱이라니!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힙합의 혁명성이다.” 이렇듯 기성의 관습이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뛰어넘으라며 작가는 소년을 독려한다. 그것은 작가 자신에 대한 독려로도 읽힌다.

소년의 성장을 북돋우는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소년과 엄마와의 관계 맺기다. “신민아 씨! 일어나!”라면서 엄마를 깨우는 아들, “담배 피우려면 니코틴 적은 걸로 피워”라고 아들에게 권하는 엄마. 쿨한 척, 멋있는 척하던 모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포즈를 접고,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는 연약한 속내를 서로 보여준다. 소년은 소년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한 뼘 더 자라고, 둘의 관계는 한층 더 끈끈해졌다. “나도 결국 어른의 폭력적인 태도를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작가의 반성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의 가사처럼 ‘내가, 우리 모두가, 이렇게, 진짜보다 더 강한 척하는 소년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는 작가의 물음이 들리는 듯하다. “이 소설은 어떤 성취나 도달, 자기극복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나는 나’라는 것을 알아가는 이야기”라는 작가의 설명은 그래서 의미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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