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벗어나 맨땅서 추는 춤 주민들과 ‘맨몸 소통’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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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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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개마을 돌며 공연 중인 안무가 잠브라노-밝넝쿨 씨

다비드 잠브라노 씨가 16일 전북 군산시 대하면 장터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제공 아냐 히첸버거 씨
다비드 잠브라노 씨가 16일 전북 군산시 대하면 장터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 제공 아냐 히첸버거 씨
시골 재래시장, 항구, 초등학교에서 미국 솔(soul) 음악이 울려 퍼지고 현대무용 공연이 펼쳐진다. 베네수엘라 출신 안무가 다비드 잠브라노 씨(51)와 한국 안무가 밝넝쿨(본명 박넝쿨·33) 씨가 16∼20일 군산 영광 청주 등에 있는 여러 마을을 돌며 공연하는 ‘10 빌리지 프로젝트’다. 잠브라노 씨는 미국 뉴욕 주 예술진흥원 전문위원을 비롯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에서 20여 년간 활동해왔다.

“네덜란드의 마을 교회에서 춤을 춘 적 있어요. 노인들이 많았는데, 모두 일어나 함께 춤을 추며 어울리더군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이거 한번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했죠.”

이번 프로젝트는 잠브라노 씨가 50세 생일을 맞아 기획한 것으로 5개국 50개 마을을 도는 ‘50 빌리지 프로젝트’의 하나다. ‘10 빌리지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10개 마을을 돌며 공연한다는 뜻. 코스타리카 세네갈에서 공연을 했고 한국 다음에는 폴란드와 네덜란드로 향한다. 2007년부터 잠브라노 씨와 교류해온 밝넝쿨 씨가 올해 봄 코스타리카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한국 공연이 이뤄졌다.

밝넝쿨 씨는 “무용수들은 공연을 극장에서 보여주기만 하고 떠난다. 그러다보니 관객과의 공유, 유대가 부족하다”며 “이렇게 차를 타고 마을까지 가서 공연을 하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하며 경험을 나누는 모든 과정이 이 프로젝트의 일부”라고 말했다.

코스타리카 - 세네갈 - 폴란드 등
5개국 ‘50 빌리지’ 프로젝트 진행

“처음엔 어색해하던 한국 분들
조금 지나니 가장 열렬히 호응”


공연은 두 안무가를 비롯해 모잠비크 출신 무용수 호라치오 마쿠아쿠아, 에디발도 에르네스트 씨가 약 5분간의 독무를 연이어 선보이는 형태다. 전주시 전북대 예술진흥관, 군산시 대하면 재래시장, 전남 영광군 백수해안도로 전망대와 해룡고, 전남 영광군 염산면 설도항에서 공연을 마쳤다. 충남 예산군 예당저수지, 홍성군 홍동면 팔개리 마을회관(18일), 경기 오산시 장당초등학교, 충북 진천군 화랑대공원 공연(19일)을 앞두고 있다. 사진작가와 의상담당 등 12∼15명이 25인승 버스를 타고 하루 12시간 이상 이동하는 강행군이다.

‘전 세계 50개 마을을 돌며 현대무용 공연을 펼치자.’ 언뜻 무모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코스타리카를 출발해 세네갈을 거쳐 한국까지 왔다.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한 안무가 다비드 잠브라노 씨(오른쪽)와 한국 공연을 기획한 안무가 밝넝쿨 씨.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전 세계 50개 마을을 돌며 현대무용 공연을 펼치자.’ 언뜻 무모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는 코스타리카를 출발해 세네갈을 거쳐 한국까지 왔다.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한 안무가 다비드 잠브라노 씨(오른쪽)와 한국 공연을 기획한 안무가 밝넝쿨 씨.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8일 예산으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기자의 전화를 받은 잠브라노 씨는 “한국 관객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잘 받아들인다. 고등학교에 가서 공연을 했는데 꼭 록 콘서트 같았다”며 “한국인들의 특징은 모두 다가와서 말을 걸고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잠브라노 씨는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하는 동안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흙바닥과 시멘트바닥, 축구장 잔디 위에서도 춤을 췄다. 그는 “세네갈에서는 늘 뜨거운 모래 위에서 춤을 춰야 했다. 발바닥이 뜨거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발밑의 흙을 조금 파낸 뒤 춤을 시작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며 웃었다.

밝넝쿨 씨는 “한국 관객들은 처음엔 어색해하는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외국보다 훨씬 더 크게 호응해준다. 마을 어르신들이 나서서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며 “춤이라는 것이 원초적인 소통의 수단이고 언어를 뛰어넘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프로젝트는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IG아트홀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제가 공연을 다니는 마을 분들은 현대무용은커녕 춤 공연 자체를 본 적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생각하는 대신 순수하게 마음으로 받아들이죠. 제가 뭔가 그들에게 가르쳐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배우고 있답니다.”(잠브라노 씨)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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