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연극女왕]4월 서주희

  • Array
  • 입력 2010년 4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연기위해 목소리-성격도 바꾼 ‘절대몰입’

4월의 연극 여왕에 선정된 서주희 씨는 무대 위의 ‘센 이미지’와 달리 애교 넘치고 사랑스러웠다. 연극 ‘대학살의 신’이 공연 중인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서 만난 그는 “이젠 관객과 더 가깝게 자주 만나고 싶다“며 한껏 밝은 포즈를 취했다. 박영대 기자
4월의 연극 여왕에 선정된 서주희 씨는 무대 위의 ‘센 이미지’와 달리 애교 넘치고 사랑스러웠다. 연극 ‘대학살의 신’이 공연 중인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서 만난 그는 “이젠 관객과 더 가깝게 자주 만나고 싶다“며 한껏 밝은 포즈를 취했다. 박영대 기자
《열한 살 동갑내기 아들 사이의 싸움으로 잔뜩 독이 오른 두 쌍의 부부.

교양 있게 대화로 문제를 처리하자고 한자리에 모였지만 은근히 서로의 신경을 긁는 말투와 태도에 배알이 뒤틀린다.

가해아동의 아버지인 변호사 알랭(박주일)의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전화 소리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그 감정을 바늘처럼 꼭꼭 찔러댄다.

하지만 정작 그 감정의 풍선을 터뜨리는 것은 그런 남편에게 핀잔을 주며 우아한 자태를 잃지 않던 아네트(서주희)다.

속이 불편하다며 강아지처럼 끙끙대더니 미셸(김세동)과 베로니카(오지혜) 부부의 거실 한복판에 토사물을 쏟아낸다.

그것도 서너 차례나.》

연극 ‘대학살의 신’에서 치졸한 감정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망가질 대로 망가지는 아네트 역의 서주희 씨. 사진 제공 신시컴퍼니
연극 ‘대학살의 신’에서 치졸한 감정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망가질 대로 망가지는 아네트 역의 서주희 씨. 사진 제공 신시컴퍼니
6일 개막한 연극 ‘대학살의 신’(연출 한태숙)에서 절묘한 ‘위액 연기’로 화제를 모은 서주희 씨(43)가 ‘4월의 여배우’로 선정됐다. 아네트의 적나라한 구토 장면은 2008년과 2009년 영미권의 주요 연극상을 휩쓴 이 작품의 트레이드마크다. 하지만 그 비법은 극비에 부쳐져 국내 제작진의 골머리를 썩였다.

“겨우 알아낸 게 호스를 이용한 기술이라는 것뿐이었어요. 그래서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다가 입안에 캡슐을 넣고 터뜨리는 방법을 자체 개발했죠. 입으로 넘어가 실제 위액까지 올라올 때도 있어요. 처음엔 주스만 넣더니 요즘엔 이물질까지 섞어 넣어 더 힘들어요.”

‘대학살의 신’서 위액까지 올리는 구토연기 화제
“무대서 100% 자신을 내버리는 몇 안되는 여배우”


설명을 듣고 공연을 봐도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그의 연기는 자연스럽다. 언제 어떻게 캡슐을 입에 넣고 터뜨리는지는 ‘영업비밀’이다. 아네트의 구토를 기점으로 닭살 돋는 냉전(冷戰)은 이전투구의 열전(熱戰)으로 비화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망가지는 인물이 아네트다. 다소곳이 남편을 내조하던 ‘귀여운 여인’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아줌마’가 된다.

1998년 ‘레이디 맥베스’ 이후 ‘버자이너 모놀로그’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등에서 강렬한 ‘포스’를 작렬시켜 ‘신기 든 여배우’라는 소리를 듣던 그로선 파격적 변신이다.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는 “그동안 서주희 하면 떠오르던 묵직한 연기에서 벗어나 미묘하면서도 코믹한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사실 아네트는 인간 서주희를 많이 닮았어요. 저 원래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목소리에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애교만점의 소녀였어요. 그러다 연극판에 들어와서 ‘괴물’ 소리도 듣고 ‘센 배우’란 말까지 듣게 된 거죠.”

중앙대 연극영화과 85학번으로 김희애 전인화 조용원 박중훈 변우민 등 쟁쟁한 동기들과 학창생활을 하면서도 기죽지 않던 그는 1989년 KBS 공채 13기로 연기인생을 시작했다. TV브라운관의 자신이 ‘글래머’로만 비치는 것이 싫어 연극판에 뛰어든 뒤 단 세 편의 작품에 출연하고 1997년 백상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백상연기대상을 받았던 ‘이 세상 끝으로’에서 안석환 씨를 만난 게 연기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연출자는 셋이었지만 배우는 안석환 씨와 저 단둘만 출연하는 작품이었는데, 하루는 안석환 씨가 정색을 하고 ‘난 네가 싫다’고 해 충격을 받았어요.”

연극 밖의 일을 자꾸 연극 안으로 끌고 들어와 신성한 무대를 어지럽힌다는 따끔한 충고였다. 그때부터 연기에 인생을 끼워 맞추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명랑한 성격을 우울하게 바꾸고 하이 톤의 목소리를 알토로 낮췄다. 그 결과 “무대에서 100% 자신을 다 내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배우”(이진아 숙명여대 교수)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노배우 박정자 씨도 “배우로서 가장 소중한 느낌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붙들 줄 아는 귀한 배우”라고 평했다.

하지만 서 씨는 “배우로선 행복했지만 여자로선 너무 힘겨웠다”고 했다. “여자로서 한창 예쁠 때인 20대엔 원숙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는 30대가 빨리 되길 꿈꿨고 지금은 진짜 모성연기를 펼칠 수 있는 50대가 빨리 되길 바란다”며 사랑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그에게 무대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박완서 씨의 소설 제목·내가 가장 나중에 지니는 것)을 바치는 제단과 같다. 그 제의를 지켜봐주는 연극 관객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그의 기도에 응답이 있기를.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