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렌즈에 담은 가난하고 따뜻한 이웃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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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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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 많이 먹어라.” 할머니의 젓가락이 등 뒤 손자의 입에 닿는다. 배불리 먹는 것이 어렵던 시절, 손자에게 밥 먹이는 것만큼 할머니에게 흐뭇한 일이 또 있었을까. 사진작가 최민식 씨의 작품에는 1960, 70년대 근대화 시기 서민들의 생활이 담겨 있다. 1965년 부산에서 촬영. 사진 제공 웅진주니어
“내 새끼, 많이 먹어라.” 할머니의 젓가락이 등 뒤 손자의 입에 닿는다. 배불리 먹는 것이 어렵던 시절, 손자에게 밥 먹이는 것만큼 할머니에게 흐뭇한 일이 또 있었을까. 사진작가 최민식 씨의 작품에는 1960, 70년대 근대화 시기 서민들의 생활이 담겨 있다. 1965년 부산에서 촬영. 사진 제공 웅진주니어
◇나를 찍고 싶었어!/신순재 글·김명진 그림/40쪽·9500원·웅진주니어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찍어온 사진작가 최민식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은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한쪽 다리를 못 써 하루 종일 도장 파는 일만 하는 아버지를 그리고 싶었고, 아버지 대신 농사일을 하는 어머니도 그리고 싶었다. 배부르게 먹는 것이 소원인 동생도…. 꿈을 위해 소년은 고향을 떠났다. 낮에는 식당 청소를 하고, 밤에는 미술학원을 다녔다. 더 배우고 싶어 몰래 고깃배를 타고 일본까지 가 쓰레기를 줍고 고물을 팔았지만 꿈이 있어 창피하지 않았다.

헌책방에 갔다가 우연히 본 사진집이 인연이 돼 사진과 인연을 맺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소년은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헐벗은 이웃들의 얼굴을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여든세 살인 지금까지 20kg에 가까운 장비를 메고 이어온 긴 과업의 시작이었다.

일하러 나간 엄마를 대신해 하루 종일 아기를 업고 있는 여자 아이, 리어카에 짐을 잔뜩 싣고 언덕을 올라가는 사내, 눈물범벅이 돼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그들의 얼굴을 찍으면서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캄캄한 길에서 문득 알았다. 지게꾼의 얼굴이 가난한 아버지와 닮았다는 것을…. 배가 고파 울던 그 아이를 어디서 보았는지도 생각이 났다. 바로 어릴 때 자신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찍은 최민식의 사진에는 삶이 묻어 있다. 그의 사진은 국내는 물론 미국 독일 프랑스 등 20여 개국 사진전에서도 빛을 발했다. 1967년 영국 ‘사진 연감’에 6점이 실리며 ‘카메라의 렘브란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68년 사진집 ‘인간’ 1집을 출간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찍는 일을 그치지 않고 2008년 13번째 ‘인간’을 내놓았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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