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빛과 선율의 ‘요란한 적막’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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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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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적 콘서트 ‘소란-음악과 빛의 소란’

1911년 3월, 모스크바에서 작곡가 알렉산더 스크랴빈의 관현악곡 ‘불의 시(詩)’가 초연됐다. 관객은 갈채에 앞서 아연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무대 위에 설치한 오르간에서 소리뿐 아니라 빛이 함께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C음은 빨강, B음은 파랑…. 각각의 음이 고유의 색상과 연결된다는 스크랴빈 특유의 공감각적 미학을 구체화한 첫 작품이었다.

99년이 지나 2010년, 서울에서 실내악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공감각 콘서트가 열린다. 26∼28일 서울 동숭동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열리는 ‘소란-음악과 빛의 소란(Fouillis de Musique et Lumi`ere)’ 콘서트다. 1부에서 첼리스트 양성원, 피아니스트 김영호,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 씨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연주하고, 2부에서는 양성원 씨가 졸탄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작품 8을 솔로 연주한다.

양 씨가 월간 객석 주최 제1회 객석예술인상을 수상한 것을 기념해 열리는 이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설치미술가 배정완 씨가 조명을 맡아 음악과 빛이 어우러지는 ‘공감각적 소란’을 빚어낸다는 점. 물론 이번 공연은 스크랴빈의 ‘불의 시’와는 다르다. 스크랴빈이 창작 단계부터 한 음=한가지 색을 등가(等價)로 놓고 창작을 진행한 반면 이번 공연은 기존의 작품에 조명을 입힌다. 무대 위에서 나선형 조형물을 설치하고 무대 뒤 벽면에 페인팅작업을 한 뒤 프로젝터로 빛을 투사한다.

배 씨는 “두 작품의 개성이 전혀 다른 만큼 조명작업도 전혀 다르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작곡가가 1941년 독일 슐레지엔(현재 폴란드령)의 괴를리츠 수용소에서 작곡해 이곳에서 초연한 작품. 첼로는 줄이 세 개뿐이었고 피아노 건반 일부는 사용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한정된 소재로 극한의 미감을 추구한 작품이다. “공감각적 상상을 동원하면 매우 강렬한 색감을 가진 작품이죠. 그렇지만 이런 강렬함을 표현하면서도 과도한 빛을 사용하지 않는 게 숙제입니다.” 배 씨는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두 감각이 상이한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조화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빛은 순간적으로 전달되지만 금세 사라집니다. 반면 소리는 한발 늦게 다가오지만 오래 지속되죠. 시각과 청각을 동원하는 공감각적 예술작업이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후반부에 연주되는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헝가리인이었던 작곡가가 동유럽 들판 특유의 서정을 집시들의 선율과 함께 엮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메시앙의 작품에서보다 한 발 물러나 첼리스트의 연주에 색감을 맞추어 나갈 것”이라고 배 씨는 설명했다.

“제목은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일곱 번째 곡에서 따와 ‘소란’이라고 지었지만 공연 자체는 제목처럼 소란하지 않을 겁니다. 시각이란 워낙 강렬한 감각이기 때문에, 섣불리 소리를 압도하지 않도록 할 것이니까요. 오히려 ‘정적’에 가까울 수도 있죠. 하지만 이 공연이 청중의 뇌리에는 ‘소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연은 26, 27일 오후 8시, 28일 오후 3시에 열린다. 3만∼5만원. 1544-1555, 02-3672-3001 www.gaeksuk.com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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