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7인의 女죄수가 사는 곳… 그곳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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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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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랑스 정원’
대본 ★★★★ 연기 ★★★★

감옥이라는 공간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는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연극 ‘프랑스 정원’. 극중 이모(오른쪽)는 예지력이 있으면서도 감옥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인물이다. 사진 제공 극단 골목길
감옥이라는 공간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는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연극 ‘프랑스 정원’. 극중 이모(오른쪽)는 예지력이 있으면서도 감옥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인물이다. 사진 제공 극단 골목길
극단 골목길의 신작 연극인 ‘프랑스 정원’의 배경은 감옥이다. 감방 두 곳에 여자 죄수 알곱 명이 갇혀 있다. 첫 번째 감방의 죄수는 이모와 조카들, 두 번째 감방의 죄수는 엄마와 세 딸이다.

감옥과 여자 죄수라는 설정이지만 연극은 이들의 사연을 줄줄이 풀어놓는 손쉬운 선택 대신 감옥이라는 공간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1막에서 딱딱하게 구령을 외치는 죄수들을 향해 간수가 “여긴 이상한 별세계가 아닙니다. 그냥 사람 사는 데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연극의 목적은 분명해진다. 감옥은 곧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은유인 것이다.

그 세계는 감시와 처벌이 분명 존재하지만 모두가 그 사실을 외면하는 곳, 불편한 진실을 피하기 위해 꿈속으로 도피하는 곳이다. 교도소장은 스스로 “나는야 목마른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을 주는 오아시스”라며 죄수들에게 마치 가족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 역시 동성애자란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당한 죄수이고, 감시의 끈을 놓지 않는 ‘불사신’이다.

죄수들이 죽은 뒤 묻힐 거라고 생각했던 구덩이는 실제로는 그들의 시간을 빼앗기 위한 아무 의미 없는 노동의 산물이다. 죽은 죄수는 교도소 하수구의 개들에게 뜯어 먹힌 채 흔적 없이 사라질 뿐이다. 첫 번째 감방의 이모는 꿈 해몽을 하고 예지력을 가진 인물인데도 감옥에 안주하기를 택한다. 두 번째 감방의 딸들은 몽유병을 겪으며 가본 적 없는 프랑스를 꿈꾸거나, 아이를 임신했다고 착각한 채 수면제로 고통을 잠재우며 살아간다.

두 번째 감방의 막내딸만이 현실을 직시한다. 1막에서 그는 교도소장의 목을 조르지만 실패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의 저항은 이모와 교도소장의 목조르기 놀이로 치환되며 조롱당한다. 막내는 감옥 안의 사람들과 관객을 향해 말한다. “사람들은 꿈을 꾸고 있어. 가짜 꿈을.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젠 그 꿈속에 빠져 헤어나질 못하지. 두려워하는 거야, 현실을. 이 삽의 무게에 눌려.”

1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이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고 저마다 강렬한 사연을 갖고 있어 극의 초점이 흐려진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극의 말미에서 “시궁창 안에서 마음껏 프랑스를 즐겨. 마음껏 프랑스 정원을 산책하라고!”라는 교도소장의 대사는 현실을 외면하며 일상에 안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뼈아픈 한마디가 된다. 1만∼2만 원.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정보소극장. 02-6012-2845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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