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과 함께 떠나는 한반도 바닷길 요트 일주] “충돌 막아라”…폭풍의 바다와 핏빛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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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3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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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단가출호 위기일발

 
바다 올레길 7차 항해의 첫날인 12월 4일. 여수 앞바다의 날씨는 화창했다.

풍랑예비특보가 있었지만 초속 6∼7m의 북서풍. 항해하기엔 안성맞춤인 바람이다.

여수 소호요트경기장에서 돛을 올리고 드넓은 가막만을 벗어나 5시간여의 순풍 항해 끝에 여수 반도 남단의 섬 소리도로 들어갔다.

마침 동네 어귀 멸치 건조장에서 멸치를 삶고 있다. 가마솥에서 무럭 무럭 피어오르는 김과 구수한 멸치 냄새… 발길이 절로 그 쪽으로 향한다.

“막 삶아서 뜨거울 때 먹는게 젤로 맛납니다. 묵어보씨요.”
요즘 여수 앞바다에서 주로 잡히는 멸치는 국물을 우려먹는 디포리라는 종류다. 여수가 고향인 허영만 선장이 막 삶아낸 멸치를 감격스런 표정으로 맛보고 있다.
요즘 여수 앞바다에서 주로 잡히는 멸치는 국물을 우려먹는 디포리라는 종류다. 여수가 고향인 허영만 선장이 막 삶아낸 멸치를 감격스런 표정으로 맛보고 있다.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 시장하던 차에 사양 않고 멸치를 집어들자, 헉∼ 손가락이 익어버릴 만큼 뜨겁다. 후후 불어가며 살을 발라먹는데 세상에 이런 별미가 있을까 싶다.

여수가 고향으로 어릴 적 부친께서 여수 인근 가막섬에서 멸치어장을 했던 허영만 선장도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멸치 삶는 물은 바닷물에 웃소금을 더 넣어 펄펄 끓인다. 냄새가 기막혀 국수를 삶아먹으면 맛있겠다고 하자 한 아주머니께서 한 마디 하신다.

“지금은 잘 안하는디, 옛날 나 젊을 때는 멸치 삶은 물을 버리지 않고 찌꺼기를 가라앉혀서 그 물로 간장을 담갔어라. 육지에선 꿈도 못 꿀 맛이지라.”

멸치 삶은 물로 담근 간장… 설명만으로 입안에 침이 고인다.

멸치 작업이 끝나자 일하던 분들이 소주 몇 병을 놓고 손짓한다. 그 역시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 유혹. 그러나 우리가 멸치작업장에서 동네 분들과 어울리고 있던 그 시각, 바다는 차근차근 힘을 쌓아 다음날 새벽 우리에게 먹일 강펀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밤까지 바다가 너무 평온해 설마 하는 마음에 닻을 좀 더 신경 써서 설치하지 않은 것이 동티였다.

꿈결이었던가? 마치 우리만 놔둔 채 모두 서둘러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것 같은 들뜨고 소란한 느낌에 한밤 중 불현듯 잠에서 깨어났다. 전날 항해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아 맷돌을 매단 것처럼 무거운 눈꺼풀.

간신히 눈을 뜨니 빼꼼하게 열어둔 선실 입구의 나무 가림판 사이로 하늘이 어지럽게 빙빙 도는 것이 보인다. 부숴버릴 듯 배를 두드려대는 파도, 윙윙 울부짖는 바람 소리….
선장으로서 새벽에 벌어진 사투를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허화백이 수습이 모두 끝난 뒤 방파제에 침낭을 두르고 앉아 바다를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선장으로서 새벽에 벌어진 사투를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허화백이 수습이 모두 끝난 뒤 방파제에 침낭을 두르고 앉아 바다를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있다.

그제서야 어젯밤 소리도로 들어오면서 여수 해경 상황실과 교신한 내용이 떠오른다.

‘풍랑예비특보가 새벽엔 주의보로 바뀝니다. 배를 단단히 묶어두세요.’

해경은 무전이 끝난 뒤에도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우리의 현재 위치 좌표를 확인한 뒤 앵커를 단단히 설치하고 혹여 무슨 일이 있으면 지체 없이 연락할 것을 당부했다.

드디어 큰 바람이 오는가?

침낭을 빠져나오자 12월 겨울 바다의 싸늘한 냉기가 덜 여민 옷깃 사이로 사무친다.

새벽 3시 50분. 속옷 차림으로 갑판에 올라보니 우린 이미 전쟁의 한 복판에 있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 강한 바람 속에는 빗방울도 섞여있다.

주위를 둘러보다 경악했다. 선착장과 배의 거리가 불과 10m. 간밤에 닻을 내린 곳은 분명히 선착장에서 4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배가 바람에 밀리고 있는 게 확실했다.

“배가 밀린다. 당장 일어나.”

자고 있던 송영복 선배와 정성안, 홍선표 등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우선 배가 돌지 않도록 선미와 선착장을 연결했던 로프가 문제였다. 그 로프가 강풍과 합세해 선착장 쪽으로 배를 계속 끌고 가는 형국.

요트는 어선과는 달리 선체가 계란껍질처럼 약하다. 이 거친 파도 속에서 선착장과 충돌하면 참극을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칼! 줄을 끊어낼 칼이 필요하다. 칠흑 같은 어둠, 안전벨트에 달린 칼을 더듬어 찾는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선미에 묶인 로프를 끊자 예상했던 대로 밀리는 방향이 바뀌어 일단 선착장 충돌 위험에서는 벗어났다.
소리도에 발이 묶인 날 저녁, 마을 식당에 들어가니 우리의 몰골이 험해보였는지 심심풀이 화투판을 벌이고 있던 어부들이 고생을 사서 한다며 혀를 끌끌 찬다.보통 ‘요트’하면 럭셔리를 떠올리지만 실상은 정반대다.이제 날씨도 추워져 몇 겹을 껴입어도 속살을 파고드는 추위는 기본이고, 파도, 바람, 그리고 열악한 선상 식사… 한번의 항해가 끝나면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 것처럼 1∼2kg씩 체중이 줄어든다.험한 항해다보니 크고 작은 부상도 잦다.이가 부러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타박상, 화상, 자상, 열상 등 다치지 않은 대원이 없을 정도다.허선장 자신도 강풍 속에서 백스테이의 금속 도르래에 이마를 맞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소리도에 발이 묶인 날 저녁, 마을 식당에 들어가니 우리의 몰골이 험해보였는지 심심풀이 화투판을 벌이고 있던 어부들이 고생을 사서 한다며 혀를 끌끌 찬다.보통 ‘요트’하면 럭셔리를 떠올리지만 실상은 정반대다.이제 날씨도 추워져 몇 겹을 껴입어도 속살을 파고드는 추위는 기본이고, 파도, 바람, 그리고 열악한 선상 식사… 한번의 항해가 끝나면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 것처럼 1∼2kg씩 체중이 줄어든다.험한 항해다보니 크고 작은 부상도 잦다.이가 부러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타박상, 화상, 자상, 열상 등 다치지 않은 대원이 없을 정도다.허선장 자신도 강풍 속에서 백스테이의 금속 도르래에 이마를 맞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닻이 완전히 빠져 하염없이 내항 쪽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 바람은 더 거세져 얼굴에 맞는 빗방울이 따끔따끔하다. 풍속계는 초속 25m를 가리키고 있었다. 젖은 손은 끊어질 듯 시리다가 급기야 감각이 없어져간다.

잠시 뒤 퉁∼ 하고 배에 둔탁한 충격이 왔다. 기어이 내항의 수심 낮은 지역까지 밀려와 얹힌 것이다. 좌초하는 순간의 충격에 송영복 선배가 호되게 넘어졌다. 잠시 후 일어난 그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넘어지면서 어딘가에 부딪쳐 입술이 터지고 앞니 두개가 부러진 것이다. 현직 치과의사인 송선배는 비상 약품함을 뒤져 진통제 한 알을 털어 넣었다. 그 와중에도 송선배는 “환자들이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아프구만”이라며 농담을 하며 웃는다.

파도는 높고 바람은 센데 의지할 닻은 무용지물이고, 한 사람은 부상을 했고 설상가상으로 배는 좌초했다. 폭풍의 바다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들이 불과 10분 동안 다 일어난 것이다. 다행인 것은 바닥이 암석이 아니라 부드러운 뻘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이대로 더 밀려들어가 해안 암벽 쪽으로 밀어붙여지는 것이었다. 암벽에 닿는 순간 배는 산산조각 날 테고 그때부터 우린 목숨 건지기에 급급해야할 터였다.

우리 뒤쪽으로 50여m 지점에 버티고선 해안 암벽에 파도에 하얗게 부서지는 것이 마치 오기만 하면 잡아먹을 기세로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는 괴수처럼 보인다.

생존의 유일한 희망은 촬영선 겸 상륙정으로 사용하는 고무보트였다. 그걸 타고 선착장 뒤편에 고정된 바지선까지 가서 로프를 연결한다면 어떻게든 밀리는 배를 고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둡고 사나운 바다에 욕조 크기의 고무보트를 타고 나가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찰나의 침묵이 흘렀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망설일 틈이 없었다. 정성안 홍선표 두 대원이 비장한 표정으로 줄을 사려들고 고무보트로 뛰어내렸다.

비바람 속에 전개된 새벽의 상륙작전은 살벌했다. 두 대원이 탄 8마력 엔진의 작은 고무보트는 바람과 파도에 유린당하며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파도가 칠 때마다 고무보트 안으로 서너 양동이는 될 만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두 대원이 사투 끝에 겨우 바지선에 도달한 것은 출발한지 10분여 후.

드디어 줄이 묶였고 최대한 줄을 팽팽히 당겨 배가 더 이상 밀리는 것을 막는데 성공했다.
삼킬 듯 달려드는 거센 파도, 추위와 허기,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를 부상의 위험까지. 집단가출호의 항해에는 수많은 고난이 따르지만 대원들은 묵묵히 거친 바다와 싸우며 한발 한발 ‘국토의 막내’ 독도를 향해 간다.  2010년은 한일합병의 뼈 아픈 역사가 있은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독도는 우리 땅!!
삼킬 듯 달려드는 거센 파도, 추위와 허기, 그리고 언제 닥칠지 모를 부상의 위험까지. 집단가출호의 항해에는 수많은 고난이 따르지만 대원들은 묵묵히 거친 바다와 싸우며 한발 한발 ‘국토의 막내’ 독도를 향해 간다. 2010년은 한일합병의 뼈 아픈 역사가 있은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독도는 우리 땅!!

이젠 좌초에서 벗어날 궁리를 할 차례. 해경에게 도움을 청한다 해도 바다가 거칠어 쉽지 않을 것이었고 좌초에서 벗어나는 것은 촌각을 다투는 긴급 과제였다.

수심이 깊은 바지선 쪽으로 배를 이동시켜야 하는데 바닥에 걸린 배의 무게 때문에 꼼짝도 하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었다. 위기의 순간, 해결책은 엉뚱하게도 우릴 이 지경으로 내몰고 있는 파도가 제공했다.

파도가 밀려 올 때마다 배가 위 아래로 요동치는데 위로 올라갈 때 배가 바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짧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우린 바지선에 연결된 줄에 의지해 파도가 배를 들어 올릴 때의 짧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엔진으로 배를 전진시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좌초 지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배가 마침내 안전지대로 들어서자, 그동안 파도를 맞으며 방파제에서 노심초사 상황을 지켜만 봐야 했던 허영만 선장이 우릴 향해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cafe.naver.com/grouprunway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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