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갯벌, 자연과 사람의 맛있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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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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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 기댄 사람들의 삶
관찰 통해 글-사진에 담은 생태와 문화 현장보고서

◇ 김준의 갯벌 이야기/김준 지음/428쪽·2만3000원·이후

“갯벌은 단순히 흙이 쌓이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삶이, 역사가 차곡차곡 쌓인 것이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히는 서해 갯벌. 해양문화 연구자이면서 사진작가인 저자는 갯벌 사람을 만나고 직접 갯벌에서 꼬막을 캐며 갯벌의 생태와 특징, 어민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담아냈다. 2000년경부터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동안 찍은 사진은 10만 컷이 넘는다. 세심한 관찰과 철저한 조사로 완성해낸 ‘갯벌문화보고서’다.

갯벌은 보물창고다. 미역과 다시마, 산호초가 자라서 ‘바다 숲’을 만들면 다양한 물고기의 산란처이자 서식처가 된다. 갯벌에서는 바지락, 모시조개, 꼬막 등 익숙한 이름부터 큰구슬우렁이, 왕좁쌀무늬고둥, 가시닻해삼 등 낯선 이름까지 다양한 생물이 살아간다. 바다에 침몰한 옛 선박과 해상유물을 고스란히 간직한 문화재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갯벌은 진수성찬이다. 저자는 전국의 갯벌에서 나는 제철 음식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 다양한 관련 역사와 문화를 풀어놓는다. 한 해의 시작은 숭어회와 숭어알인 어란이다. 모치, 애정이, 무근사슬, 미패, 나무래미…. 여러 곳에서 잡히고 민초들의 사랑을 받은 덕분에 지역마다, 크기마다 숭어를 부르는 이름이 다를 정도다. 영산강 상류에서 잡히는 숭어의 알은 임금에게 진상할 정도로 귀했다.

여름에 제맛인 민어는 전남 신안군 임자도가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유명해서 제철이면 음식점 90곳, 요리점 15곳에 기생 130여 명이 상주할 정도였다. 이 밖에 가을에는 전어와 망둑어, 낙지, 겨울에는 홍어와 매생이를 놓칠 수 없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만큼 갯벌에 터를 잡은 마을도 많다. 충남 태안군 안면도의 작은 섬인 황도는 갯벌로 다시 살아난 마을이다. 1970년 천수만 간척 뒤 김 양식이 불가능해졌다. 다른 수입원이었던 조기잡이도 수입이 줄고 선원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쇠퇴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바지락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갯벌은 마을의 공동재산이기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에게 공평하다. 사람들은 이제 바지락 양식으로 가구당 연간 2000만 원이 넘는 수입을 올린다.

이어 저자는 갯벌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 눈을 돌린다. 광양만은 국내 최대의 김 양식지였고 그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자리도 모두 김 양식지였다. 제철소가 들어선 뒤 이곳 사람들은 한 달 200만 원을 받으며 정년을 걱정해야 하는 단순 노무직으로 살아간다. 저자는 ‘죽음의 호수’였던 시화호에서 새만금의 미래를 본다. 시화호는 방조제의 문을 열고 바닷물을 흐르게 한 뒤 살아날 수 있었다.

“열여섯 살에 낙지 잡고 했응께. 열아홉 살에 다시 여기로 들어와서 스무 살에 낙지 잡고 김 양식도 시작했지라우….”(무안 갯벌 낙지잡이 정순환 씨)

예전 같지 않아도 사람들은 여전히 갯벌에 기대 살아간다. 배 짓는 목수 대목장 손정종 씨,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바다로 나가는 황도사람 홍길용 씨, 염전에 미쳐 프랑스에까지 가서 염전공부를 하고 왔던 상태도 박성춘 씨…. 이들의 생생한 육성 속에 바다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어민들의 삶을 담았다. 저자는 갯벌의 생물들과 어민들을 가리켜 “스승이자 환경운동가, 경제학자, 철학자”라고 표현하며 “이 책은 그들에게 바치는 나의 작은 수강료다. 어리석은 육지 것을 깨우쳐 준 것에 대한 작은 감사다”라고 말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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