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은 힘이 세다…‘강화도 시인’ 함민복 에세이집 刊

  • 입력 2009년 10월 5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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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삶 속 웃음 -넉넉함 담겨

‘눈물은 왜 짠가’ ‘긍정적인 밥’ 등 인간미와 진솔함이 살아 있는 따뜻한 시를 선보여온 함민복 시인(47·사진). 1996년부터 인천 강화도에 정착해 ‘강화도 시인’으로 알려진 그가 신작 에세이집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현대문학)에서 개펄과 시골마을에서의 일상, 인생길에서 만난 인연과 추억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시인은 병상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온 어머니를 올해 1월 잃었다. 그의 절절한 사모곡이 읽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의식이 흐려져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시인은 밤새 서툰 기도를 한다.

“어머니, 소가 되셨나요. 왜 코뚜레를 하고 계세요? 어머니, 코끼리가 되셨나요. 왜 코에서 나온 호스로 미음을 드시죠? 어머니, 소처럼 벌떡 일어나세요. 어머니, 코끼리처럼 큰 소리로 저를 한 번 불러주세요…열쇠처럼 쪼그맣지만 내 모든 것을 열어준 어머니, 나의 어머니!”(‘산소 코뚜레’)

그가 회상하는 유년시절의 추억은 곳곳에서 사람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학교에 내야 할 수업료가 밀리면 등교하지 않고 울면서 무작정 걷기만 했던 소년. 혼자 물고기를 잡으면서 그 서러움을 삭였던 그를 친구들은 ‘어부’라고 불렀다. 어느 날 정육점을 하는 친구 아버지가 물고기 한 꿰미를 돼지고기와 맞바꾸자고 했다. 물고기 잡으러 가 돼지고기를 가져온 그 일 때문에 그의 별명은 더 널리 알려진다. 그의 집에서 한 번도 고기를 사간 적이 없다는 것을 안 친구 아버지가 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고자 한 배려였다는 것을 그는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된다. (‘물고기’)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할 때도 시인은 긍정의 시선을 잃지 않는다. 고달픈 삶이지만 그 속에 웃음과 넉넉함, 연민이 있기에 그의 산문은 울림이 크다. ‘가난한 집에는 할머니들 구리반지 냄새가 난다’ ‘앰뷸런스 소리는 소리의 단풍이다’처럼 시인이 일상에서 얻어낸 시구(詩句)들은 산문을 더 빛나게 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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