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사회발전 못 따라갔다” 자성

  • 입력 2009년 9월 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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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배우러 오는데 우리만의 분석틀은 어디에…

《한국 사회과학계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한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이념 갈등과 정치 균열이 심화되는 위기를 겪고 있지만 이를 한국적 시각에서 근원적으로 분석하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반성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의 발전을 이론화해 세계 지식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책무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나온다. 한마디로 “실천적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사회과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뼈저린 자책이다.》

전국 대학의 사회과학대학장들이 올해 5월 전국사회과학대학장협의회(공동회장 윤창호 고려대 정경대학장, 임현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를 창립하고 최근 ‘한국의 사회과학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에 앞서 올해 3월 전국국공립사회과학대학장협의회는 국회에서 ‘위기의 시대-사회과학의 역할을 묻는다’는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 한국적 사회과학 연구틀 부재

학계 내부에서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외국 이론만이 무성한 현실이 제일 먼저 도마에 올랐다. 장지상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개발도상국들이 유례없는 발전 경험을 가진 한국을 찾아오지만 우리는 수입된 경제발전 모델만 갖고 이를 공유하려 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다른 나라 ‘따라잡기’에만 관심을 가지면 됐지만 이제는 우리 스스로 발전 모델을 만들어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과학 분야의 연구가 단편적이고 파편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과학이 장기적이고 학제적인 연구가 필요한 ‘거대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학자들의 학제적 연구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태진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은 “사회과학분야 연구들이 정부의 정책연구를 통해 주로 이뤄지면서 1년 단위의 단기적이고 정책응용적인 연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3월 학술대회에서 ‘한국의 사회과학-현실과 과제’를 주제로 한 발표문을 통해 “수년간 전개된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논의는 사회과학자들의 종합적 사고 결여의 결정판이었다”고 비판했다. FTA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면 역사와 제도를 기초로 종합적으로 접근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논의만 무성했다는 지적이다.

○ 근본적인 기초 연구 부재

사회과학 연구에 필요한 기초자료 확보를 위한 연구가 절실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는 사회과학에 기초학문의 성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응용학문으로만 보는 시각과 무관치 않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 등 동양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의 차이를 연구하겠다는 연구 과제를 제안하면 채택되지 않기 십상”이라며 “향후 가속화될 세계화를 염두에 둔다면 세계인의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우리 시각의 ‘세계 정신 지도’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자료”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진단을 위한 자료 구축은 학문의 후속세대 양성과 자생적인 지식 생산과도 직결돼 있다. 경제규모나 국가 위상에 걸맞게 한국에서도 30∼40년 단위의 대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 때문에 나온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는 노령화 연구와 관련해 신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지능력, 정서적 반응 변화 등을 20년 넘게 연구하는 ‘베를린 스터디’가 진행 중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거시적인 사회과학적 과제는 저출산과 고령화, 다문화, 기후변화 문제”라며 “장기적인 대안 제시는 사회과학자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지만 지금 학계의 연구는 충분치 못하다”고 진단했다. 윤창호 고려대 정경대학장은 “한국의 발전이 발목을 잡힌다면 그것은 사회과학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최소한 인문학에 못지않은 연구비 증액과 연구 지원 방식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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