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출판사 과열경쟁… 日소설 ‘몸값’만 치솟아

  • 입력 2009년 7월 14일 02시 56분


《국내 한 출판에이전시 대표 A 씨는 6월 초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작권 거래를 대행하는 일본의 사카이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하루키의 인기 소설 ‘1Q84’의 한국 내 판권 입찰 경쟁에 참여하라는 전갈이었다. A 씨는 “의외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하루키의 작품은 대부분 사카이로부터 국내 에이전시 북포스트를 거쳐 문학사상사에서 번역 출판됐기 때문이다. A 씨는 오랜 거래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 출판계의 관행상 이번에도 하루키의 작품이 같은 과정을 거쳐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A 씨는 “사카이의 메시지는 ‘특정 출판사에 우선권을 줄 생각이 없으니 자유롭게 입찰에 참여하라’는 것으로 해석됐다”고 밝혔다. 비슷한 연락을 받은 국내 에이전시들은 출판사들과 손잡고 판권 경쟁에 나섰다.》

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1Q84’ 국내판권 先인세 첫 1억 엔 돌파

한국시장에 日소설 붐
출판사들 ‘돈놓고 돈먹기’
日출판사들도 경쟁 유도
5억→7억→10억원…
“13억 불렀는데도 탈락”

○ 일본 출판계도 놀란 하루키 선인세

A 씨는 한 출판사와 함께 선인세 5억 원을 하한선으로 잡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는 “애초부터 이 금액으로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하긴 했으나 사카이로부터 흘러나오는 예상 낙찰가는 짧은 시간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뛰었다”고 밝혔다. A 씨는 5억 원에서 7억 원, 7억 원에서 10억 원, 나중에는 13억 원까지 제시했으나 탈락했다.

판권은 최근 문학동네에 넘어갔다. 문학동네 측은 선인세에 대해 “1억 엔(약 14억 원) 정도를 제시했다. 정확한 액수는 말할 수 없다”고 13일 밝혔다. 출판계에선 탈락한 출판사들의 제시 금액을 근거로 15억 원가량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판사 비채의 문준식 팀장은 “하루키 작품 중 ‘해변의 카프카’의 선인세가 6억 원 선으로 알려졌다. 2배가 넘는 이번 작품의 선인세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과에 놀란 것은 일본 쪽도 마찬가지였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일본 출판계 인사와 통화를 했는데 1억 엔을 웃도는 금액에 낙찰됐다는 말에 무척 놀라워했다. 이 정도 가격에 하루키의 작품을 살 나라는 한국 말고는 아마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출판계는 액수도 액수지만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먼 북소리’ 등 하루키의 작품을 대부분 출판해온 문학사상사가 선정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의외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학사상사 관계자도 “예전에는 액수가 비슷하다면 우리에게 계속 맡겼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이유를 밝히지 않고 탈락했다는 사실만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 선인세 뛰고 인연도 잃고

이번 사례는 일본 소설 판권을 따내기 위해 국내 출판사들이 벌이는 과열경쟁의 극단을 보여준 것이라고 출판계 인사들은 지적한다. 사카이 에이전시가 한 업체와 꾸준히 거래해오던 관례를 깨고 국내 모든 에이전시에게 경쟁을 시킨 것도 과열 경쟁 분위기를 탄 ‘대박 노리기’로 해석된다. ‘1Q84’가 일본에서 5월 말에 나온 뒤 폭발적인 반응이 일자 판권 입찰이 공식 개시되기 전부터 국내 출판사 대표와 임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판권 교섭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연구원은 “한국 출판사들이 ‘돈 놓고 돈 먹기’ 식으로 달려들다 보니 사카이로서도 돈에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루키 외에 다른 일본 작가들의 소설 쟁탈전도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 등이 크게 히트하고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작가가 인기를 끌면서 경쟁이 가열됐다. 국내 번역 출판된 일본 문학작품은 2000년대 초 300∼400종에서 2006년 581종, 2008년 837종으로 급증했다.

이에 발맞춰 일본 소설에 대한 선인세는 2000년대 초 30만∼50만 엔 선에서 최근엔 300만∼500만 엔 수준으로 10배가량 뛰었다. 한 에이전시 대표는 “과열 경쟁의 결과로 일본 작가들이 국내 특정 출판사와 오랜 인연을 유지하던 관례도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지난해 사카이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만 해도 ‘한국 출판사들이 돈만 앞세워 하루키를 문학사상사로부터 뺏어가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그랬던 사카이가 이번에 완전 경쟁을 실시한 것은 결국 한국 출판사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소장은 또 “한국 출판계의 불투명한 회계 시스템이 선인세의 상승을 불러왔다”며 “일본 출판사 중에는 한국 출판사들이 판매량을 축소하는 바람에 인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믿는 곳이 많아 일단 선인세로 최대한 받아 놓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외국도서 先인세 ‘인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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