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사랑에 빠진 ‘두 얼굴의 셰익스피어’

  • 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로미오 &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동시에 선보여

사랑은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숭고한 것일까 아니면 하룻밤 꿈처럼 허망한 것일까. 왜 어떤 사랑은 영원불멸의 불길로 타오르는데 다른 사랑은 붙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물처럼 흘러가 버릴까.

사랑이야 그렇게 야누스의 두 얼굴이라고 해도 사람은 그럴 수 없는 법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말한 입으로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외칠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가(大家)에겐 그게 가능한가 보다. 영원한 사랑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써놓고선 변화무쌍한 사랑의 변심을 그린 ‘한여름 밤의 꿈’을 내놨으니까.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두 얼굴의 사나이’ 셰익스피어를 만날 수 있다. 8월 3일까지 오페라극장(02-553-8815) 무대에 오르는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 줄리엣’의 첫 한국어 공연과 자유소극장(02-3672-8070)에서 공연하는 극단 한양레퍼토리의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는 이탈리아 베로나를 무대로 두 귀족 가문의 복수혈전 속에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한 청춘남녀의 비극적 사랑을 서정적 멜로디에 담아낸 프랑스 뮤지컬이다. 2007년과 올해 초 투어공연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이 작품을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작품은 올해 투어 공연의 부진과 공연 중 기획사의 교체로 완성도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중견과 신예의 조화가 어우러진 무대는 기대 이상으로 탄탄했다. 무용이나 조명에선 오리지널 공연에 비해 역동성과 미묘함이 떨어졌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역의 주연배우들은 극중과 실제 나이가 비슷했던 프랑스 원작공연과 비교할 때 아쉬운 풋풋함을 노련함으로 잘 메웠다. 특히 캐퓰렛경 역의 김진태 씨와 유모 역의 김현숙 씨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한국어 가사를 통해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한여름…’은 그리스 아테네를 배경으로 드미트리어스(최진영)와 헬레나(김효진), 라이샌더(조한준)와 허미어(정선아) 네 귀족남녀가 숲 속 요정의 장난에 놀아나 얽히고설킨 삼각관계를 통해 사랑의 무상함을 폭로한 로맨틱 코미디. 최형인 한양대 교수가 번역과 연출을 맡았고 나중 유명해진 제자들이 여럿 출연했다. 맛깔스러운 우리말 대사와 능청맞은 연기로 셰익스피어 희극의 참맛을 보여준다.

사랑에 대한 이들 두 작품의 대조적 관점은 ‘한여름 밤의 꿈’에서 극중극으로 등장하는 ‘피라머스와 티스비’를 통해 뚜렷해진다. 사랑하는 피라머스와 티스비는 어느 날 묘지에서 만날 약속을 하는데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한 티스비가 사자에게 쫓겨 도망가며 피 묻은 망토를 떨어뜨린다. 이를 발견한 피라머스는 티스비가 죽은 줄 알고 단도로 자결하고 뒤늦게 약속장소로 돌아온 티스비는 운명을 저주하며 그의 뒤를 따른다.

‘로미오…’의 명백한 패러디다. 그러나 ‘한여름 밤의 꿈’ 속 주인공들은 이 작품을 계속 조롱하면서 희희낙락한다. 심지어 “작가(셰익스피어)가 피라머스 역을 맡아 티스비의 스타킹으로 목을 매 죽었다면 더 멋진 비극이 됐을 텐데”라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노래한 원작의 순진함을 비웃는다.

그렇다고 늙은 셰익스피어가 젊은 셰익스피어를 통째로 부정했다고 볼 수 없다. ‘한여름…’ 속 주인공들은 큐피드 화살의 묘약이 묻은 꽃즙의 마법이 있건 없건 사랑에 빠진 그 순간만큼은 목숨을 걸 만큼 자신의 감정에 충직하다. 그들은 사랑이 끊임없는 모순이며 꿈처럼 붙잡을 수 없기에 생명력을 지닌다는 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기에 사랑 앞에 주저하는 법이 없다. 늙은 셰익스피어의 혜안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빛난다. 사랑의 동의어는 결코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란 통찰력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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