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젠 국제시각서 함께 연구를”

  • 입력 2009년 6월 1일 02시 54분


6일 출범 국제한국사학회 창립준비위원장 박정신 교수

“한국사 연구에 있어 민족과 국가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외국 학자들과 교류하고 시각을 공유하는 데 소홀했습니다. 민족과 국가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국내적 시각으로만 한국사를 볼 게 아니라 ‘국제’와 ‘한국사’를 묶어 보려 합니다.”

6일 서울 숭실대에서 국제한국사학회의 창립식이 열린다. 국내외 한국사 연구자들의 교류를 통해 한국사를 폭넓게 보면서 ‘국사 또는 민족사학’의 한계를 극복해 보자는 취지다. 일국사를 넘어선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를 분석하는 ‘트랜스내셔널 연구’와 같은 맥락이지만 특정 역사 개념이 아닌 한국사라는 분야를 중심에 놓는다는 점이 다르다.

이 학회에는 창립준비위원장인 박정신 숭실대 교수(60·사학)를 비롯해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 임종명 전남대 교수, 심재훈 단국대 교수 등 30여 명의 국내 학자들이 참여한다. 존 덩컨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 교수와 조선후기사 권위자인 도널드 베이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를 비롯해 러시아 일본 중국의 한국사 연구자들도 참여한다. 박 교수는 워싱턴대에서 한국현대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오클라호마주립대 종신교수로 재직하다가 2000년 귀국해 모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사 연구의 국제적 네트워크 구축을 강조했다. 미국 유럽 등 지역별 연구책임자를 두는 방식으로 교류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박 교수는 일제강점기 경제 변화를 둘러싼 식민지근대화론 논쟁을 예로 들어 교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나 비판하는 학자 모두 경제 수치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학교와 공장 수, 경제 규모 등의 변화, 농지개혁 통계를 근거로 수치 놀음만 하는 것이지요.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회학자이자 동아시아 역사를 연구한 로버트 벨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와 같은 분은 1960년대부터 ‘근대화’를 삶의 만족도 같은 생활사 측면에서 함께 봐야 하는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사 관련 영문 자료 발굴도 이 학회의 목표 중 하나다. 미국 국가안보기록보관소와 의회도서관 등이 보관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관련 문서 중 발굴되지 않은 자료들이 많기 때문이다.

“‘국학(國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역사 자료를 국가 경계 안에서만 찾으면 안 됩니다. 일본어, 중국어, 한문 자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문 자료는 학자들이 주목하지 않았어요. 능숙하게 영문 자료를 해독할 수 있는 학자들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박 교수는 국내 학계가 민족주의라는 특수성에 집착하는 경향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세미나에서 한국 민족주의와 관련해 ‘기독교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했더니 많은 학자들이 ‘기독교는 일종의 보편주의인데 어떻게 민족주의라는 특수주의와 함께 쓸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해 오더라”면서 “일제강점기 등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기독교와 민족주의가 사회학적으로 용해(fusion)되는 사례가 있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내 학계만의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자성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국제한국사학회는 매년 2, 3차례 세계 각국에서 학술회의를 열 계획이다. 박 교수는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 한국사를 주제로 학자들과 교류하고 그 성과를 영문과 국문 학술지 형태로 발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6일 창립식에서는 도널드 베이커 교수가 ‘한국역사학: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강연한다. 베이커 교수는 다산 정약용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해외에 다산학을 소개한 공로로 지난해 다산학술상을 받았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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