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의사시인 마종기-34세공학박사가수 루시드 폴 ‘퓨전만남’

  • 입력 2009년 5월 21일 02시 56분


“조 군 별칭이 ‘음유시인’이라고 하는데 ‘음유’를 빼도 될 만큼 가사가 좋더군요.” 마종기 시인(왼쪽)의 말에 가수 루시드 폴은 “때로는 위안을, 때로는 웃음을 주는 선생님의 시에서 받은 감화가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조 군 별칭이 ‘음유시인’이라고 하는데 ‘음유’를 빼도 될 만큼 가사가 좋더군요.” 마종기 시인(왼쪽)의 말에 가수 루시드 폴은 “때로는 위안을, 때로는 웃음을 주는 선생님의 시에서 받은 감화가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장르-세대 벽 넘어 e메일 우정
“불통사회에 소통 출구 열고파”

《낯선 조합이다. 고희를 맞은 미국 거주의 시인 겸 의사 마종기 씨와 스위스 로잔공대 공학박사인 음악인 루시드 폴(조윤석·34) 씨. 이들이 36년의 나이 차와 서로 다른 전공, 대서양을 사이에 둔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2007년부터 최근까지 2년간 e메일을 주고받았다. 마 씨는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1966)의 아들로 고국을 떠난 그리움을 시어로 조탁해 온 원로 시인이며, 조 씨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가사 덕분에 ‘음유시인’으로 불리며 인기를 누리는 대중가수다. 조 씨는 스위스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는 동안 마 씨와 음악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나눴다.》

마종기 “익숙지 않은 음악에 어리둥절했지만 개성과 창의력에 감탄”
루시드 폴 “위안과 웃음 주는 선생님 시 통해 좋은 음악 표본 얻어”

이들의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웅진지식하우스) 출간을 맞아 두 사람을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4월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마 씨는 조 씨에게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선물로 내밀었다. 마 씨는 “문학과 음악의 접촉점이 다르다 보니 릴케의 서간집처럼 예술의 한 분야에 대한 고민을 깊게 파고들진 못했다. 조 군을 생각하며 다시 읽게 된 책이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굳이 철학이나 문학이론을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세대의 문학가와 음악인이 만나 예술의 지평을 넓힌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간을 주고받게 된 것은 조 씨가 마 씨의 오랜 팬인 것을 아는 한 출판인의 소개 덕분이었다. 조 씨는 “흠모의 대상이신 데다 연세도 많으시고, 글 쓰시는 분이라 편지를 드리는 게 조심스러웠다”며 “내 음악을 좋아하실지도 내심 두려웠던 부분 중 하나”라고 털어놨다. 아니나 다를까, 마 씨는 조 씨 음악에 대한 첫 느낌을 “어리둥절함”이라고 요약했다.

“멜로디나 박자에 집중하는 고전음악만 들어선지, 가사와 곡을 함께 이해를 해야 하는 음악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내 접근법이 잘못됐다는 걸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어요.”

아버지와 아들뻘의 나이 차와 문화적 차이가 주는 당혹감은 곧 ‘디아스포라’(유랑·이산)라는 공감대로 완화됐다. 마 씨는 20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간 뒤 40여 년간 이방인으로의 삶을 자처했다. 조 씨도 박사학위 과정 6여 년 동안 경계인으로 느낀 향수를 3집 ‘국경의 밤’을 통해 노래했다. 고국으로부터 떨어진 격리감이나 소외감, 외부에서 관찰한 한국의 사회상에 대한 의견도 자유롭게 오갔다.

“한국 사회의 격동기였던 1960, 70년대를 멀리 떨어져 보낸 데 대한 부끄러움이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외국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고국이 세계에 어떻게 인식될지에 먼저 신경이 쓰여요. 국회의 난동이나 사유가 불투명한 대규모 시위 등을 보면 불만이 생깁니다.”(마 씨) 마 씨는 “현실참여파, 순수문학파의 구분에만 몰두한 나머지 한국어를 쓰는 교포들의 문학에는 관심을 거의 가지지 않는 한국 문단의 닫힌 구조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 씨는 “외국에 머물면서 그런 점이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복지, 경제, 정치면에서 완벽하게 안정된 평화로운 나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살률은 매우 높아요. 우리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는 어쩌면 젊고 미성숙한 사회가 문제를 조정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예술가임에도 또 다른 전문직을 가진 공통점이 있지만 각자가 가진 고충은 사뭇 달랐다. 마 씨가 “늘 사람을 접하며 연민과 측은함을 느끼는 의사란 직업은 시인으로서의 삶과 별 충돌이 없었다”라고 한 데 비해 조 씨는 “실용성,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는 공학이 감성적으로 버거울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런 교류 가운데 두 사람이 모두 공감한 것은 우리 사회에 ‘소통’이 부재한다는 것. 마 씨는 “한국에 나올 때마다 세대, 이념 차이에 따라 의사소통이 막힌 것을 절감했다”며 “조 군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자기주장과 개성을 고집할 만큼 창의력과 실력이 뒷받침된 이들이란 걸 알게 돼 감탄했다”고 말했다. 이제 마 씨는 조 씨의 음악을 ‘대화를 나누려는 외로운 영혼의 숨소리’로 정의한다. 조 씨 역시 마 씨와의 교감을 통해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감동을 주는 것이 좋은 음악이란 표본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의 만남은 장르를 넘어선 교류기도 하지만 세대 간의 교통이기도 하다”며 “이 시도가 꽉 막힌 통로에 ‘작은 출구’를 만들 수 있지는 않을는지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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