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제발 때리지 마세요”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자녀 폭행-방임 등 아동학대 7년새 2.6배로
가해자 84%가 부모… 83% 집에서 발생

한국은 1991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다. 이는 소득 국적 성별 등을 떠나 18세 이하 아동, 청소년들은 생존·발달·보호·참여 권리를 평등하게 제공받아야 한다는 국제 협약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아동 중 상당수는 권리를 보장받기 보다는 여전히 ‘학대’에 신음하고 있다. 게다가 아동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부모에 의해, 가정에서 이뤄지는 학대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성학대 후유증으로 외출 꺼려

서울 은평구의 중학교 2학년 수영이(가명·14·여)는 학교에 다녀오는 것 말고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혼자 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수영이 어머니는 이를 초등학교 시절 생긴 수치심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수영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술을 먹고 들어온 아버지(51)가 조용히 수영이를 불러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런 일은 2년이 넘도록 계속됐다. 사회복지사 백영미 씨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 굉장히 활발한 척 하지만 어두운 면이 드러난다”며 “이런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의 중학교 1학년 지현이(가명·13·여)의 아버지(38)는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면 “너 죽고 나 죽자”며 칼을 휘두르곤 했다. 2년 전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간 후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 망치로 가재도구를 부수기도 하고, 지현이가 뺨을 맞는 일도 다반사였다. 잠을 못자게 하기도 했고, 술 사먹을 돈을 빌려오라며 지현이를 밤중에 밖으로 내보내는 일도 많았다. 지현이와 할머니, 오빠는 아버지 몰래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기초생활보장급여를 받으려면 주민등록을 해야 하지만 나중에라도 아버지가 찾아올 것이 두려워 엄두를 못내고 있다.

○ 가해자 1위는 ‘부모’

최근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펴낸 ‘2008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 가해자 중 84.5%는 부모였다. 타인과 친인척은 각각 7.2%, 6.5%. 또 학대 발생 장소 중 83.1%는 ‘가정’으로 나타났다. 2001년 2105건이던 학대피해아동 보호 건수는 지난해 5578건으로 7년 만에 2.6배 증가했고, 아동학대 상담 신고 건수도 지난해 9570건으로 2001년(4133건)보다 2.3배 증가했다.

학대 유형별로는 △보호자가 양육과 보호를 소홀히 해 아동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하는 ‘방임’이 3105건(39.8%)으로 가장 많았고, △언어적정서적 위협이나 감금억제 등 가학적 행위를 하는 ‘정서학대’가 2315건(29.7%) △육체적 고통을 주는 ‘신체학대’ 1857건(23.8%) △아동을 성욕 충족의 대상으로 삼는 ‘성학대’가 424건(5.5%) △유기가 94건(1.2%)이었다.

국제 아동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굿네이버스 이호균 부회장은 “여러 방법으로 이뤄지는 학대는 아동들을 학습부진, 부적응, 가출, 주의산만, 신체발달 지연 등에 빠지게 해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방해한다”며 “아동 보호를 위해 부모의 친권을 탄력적으로 제한하거나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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