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에게 인삼 처방한 어의가 맞아죽은 까닭은?

  • 입력 2009년 2월 23일 17시 06분


정조 독살설 재반박

-주간동아 675호

정적으로 알려진 정조와 노론벽파의 영수 심환지가 실제로는 가까운 사이였음을 증명하는 어찰첩이 공개됐지만 정조 독살설에 대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미 소설을 통해 정조 독살설을 퍼뜨린 일부 작가들이 “어찰로 인해 독살설이 더욱 신빙성을 얻게 됐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6월 ‘주간동아’(639호)에서 정조 독살설을 조목조목 비판했던 한의사 이상곤(갑산한의원 원장, 전 대구한의대 교수)씨가 ‘주간동아’ 675호에 다시 글을 기고해 “정조의 직접 사인은 열로 인한 종기이며, 정조의 종기를 사망에 이르도록 악화시킨 것은 당시 어의(御醫) 강명길이 처방한 인삼 처방(경옥고)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조 사망일(1800년 6월28) 이전 보름과 그후 책임자 문책과정을 실록과 의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글에서 이씨는 “심환지의 친척인 심인이 정조의 종기에 사용함으로써 독살설의 뿌리가 된 수은 함유 연훈방은 독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약이 됐다”며 “이는 정조 사망 이틀 전인 1800년 6월26일 도제조 이시수와 정조와의 대화 내용에서도 확인되고 혜경궁 홍씨 편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정조가 수은 함유 연훈방을 쐰 후 ‘종기에서 피고름이 한 바가지 나왔다’는 실록 기록은 종기가 급격히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고증을 통해 밝혀냈다. 오히려 연훈방으로 병세가 좋아지던 정조를 하루 만에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어의 강명길이 적극 추천한 인삼 함유 경옥고와 몸에 열을 올리게 했던 여러 약재들 때문이라는 것. 정조는 어릴 때부터 몸에 열이 많았고, 이 때문에 늘 종기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때문일까. 정조의 사랑과 신임을 한 몸에 받던 어의 강명길은 정조 사후 ‘노륙(孥戮)형’에 처해졌고,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죽게 된다. 주간동아 기사에는 한의학적 지식이 뛰어났던 정조가 인삼 복용을 두고 마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는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자세한 내용은 주간동아 675호(3월3일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최영철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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