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흑인이 된 백인의 차별체험기

  • 입력 2009년 2월 14일 02시 58분


◇블랙 라이크 미/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하윤숙 옮김/416쪽·1만6000원·살림출판사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온갖 차별을 감당해야 했던 타자(他者)인 흑인 삶에 뛰어들어 흑인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한 백인에 대한 이야기다.

49년 전 미국의 소설가 그리핀 씨는 7주간 흑인으로 살았다. 피부과 전문의의 도움으로 색소를 변화시키는 백반증 치료제를 먹으며 강한 자외선에 온몸을 쪼여 피부를 검게 만들고 온몸에 검은 안료를 수차례 발라 흑인이 됐다.

저자의 솔직한 성찰이 담긴 이 책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이른바 ‘일등시민’이 ‘이등시민’이라는 넝마 더미 속에 내던져졌을 때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1959년 10월 28일 미국 텍사스 주 맨스필드에 살고 있던 저자는 남부 흑인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봤고 흑인의 비참한 삶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었다. 저자는 직접 흑인이 돼 보기로 했다. 11월 1일 뉴올리언스에 도착한 저자는 의사의 도움으로 피부를 검은색으로 바꾸고 흑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한다.

어느 날 버스 안. 저자는 자리에 앉았고 옆자리는 비었다. 중년 백인 여성이 탔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여성. 저자가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나려 하자 뒷자리의 흑인이 말렸다. 백인이 앉지 않은 건 흑인 옆에 앉기 싫다는 표시였다. 저자는 다시 앉다가 백인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여성의 눈빛을 양보에 공감하는 것으로 생각한 저자는 인종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날카롭게 돌변한 눈빛과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나날이 뻔뻔스러워진다니까”라는 말이었다.

심신이 지친 저자가 묻는다. ‘흑인이 쉴 만한 곳은 어디 있을까.’ 호텔방에 돌아오면 같은 말이 머릿속에서 되풀이됐다. “이봐, 검둥이, 거기 들어가면 안 돼. 이봐, 검둥이, 여기서 마시면 안 돼. 검둥이에게는 음식을 팔지 않습니다.” 이 고통은 저자가 염료를 지우고 자외선을 쬐지 않은 뒤 ‘백인으로 돌아오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저자의 거짓말 같은 체험은 타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그들에게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이야기해 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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