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하워드 감독 “변신? 내겐 모든 작품이 흥미로운 탐험”

  • 입력 2009년 2월 10일 02시 59분


론 하워드 감독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하지 않은 오만한 닉슨, 어설픈 각오로 나섰다가 뒤늦게 분발하는 쇼 프로그램 진행자 프로스트를 통해 언론의 역할을 조명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UPI코리아
론 하워드 감독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하지 않은 오만한 닉슨, 어설픈 각오로 나섰다가 뒤늦게 분발하는 쇼 프로그램 진행자 프로스트를 통해 언론의 역할을 조명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UPI코리아
토크쇼 진행자 프로스트(왼쪽)와 닉슨 전 대통령의 인터뷰 대결을 그린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
토크쇼 진행자 프로스트(왼쪽)와 닉슨 전 대통령의 인터뷰 대결을 그린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
내달 5일 개봉 ‘프로스트 vs 닉슨’ 론 하워드 감독 전화 인터뷰

인터뷰는 결투다. 덜 말하려 하는 인터뷰이와 더 말하게 하려는 인터뷰어의 팽팽한 줄다리기. 3월 5일 개봉하는 ‘프로스트 vs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한 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 토크쇼 진행자 프로스트의 불꽃 튀는 인터뷰 승부를 그렸다.

경쟁 후보를 도청한 사건으로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재기를 노렸던 정치가. 아픈 데를 더 아프게 헤집으려 덤벼든 토크쇼 진행자. 1977년 4500만 명이 넘는 시청자를 케이블 TV 앞에 끌어 모았던 두 사람의 실제 인터뷰를 소재로 한 ‘프로스트 vs 닉슨’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론 하워드(55) 감독을 4일 전화로 만났다.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다. ‘스플래시’ ‘분노의 역류’ ‘뷰티풀 마인드’ ‘다빈치 코드’ 등 그동안 만들어 온 영화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심각한 영화를 만들 나이가 됐다’는 부담이 있었던 건가.

“내게는 모든 작품이 흥미로운 탐험이다. 비슷한 영화를 공장처럼 찍어내고 싶지 않을 뿐, ‘이번에는 이렇게, 다음에는 저렇게’식의 계획은 하지 않는다. 연출할 작품의 선정 기준은 단 하나, 호기심이다. 끝없이 배우면서 알게 되는 모든 것을 스크린에 담고 싶다. 작품마다 변신하는 메릴 스트립, 대니얼 데이 루이스처럼 나도 늘 새롭게 변신한다.”

‘워터게이트’ 인터뷰 실화 그려

아카데미상 감독상 후보 올라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배경으로 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년)이나 ‘닉슨’(1995년)은 당시 관객에게 미국 영화계의 양심고백으로 여겨졌다. 2008년의 ‘프로스트 vs 닉슨’이 지금의 관객에게 특별한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과거의 정치에 대한 이해는 미래를 위한 답을 준다. 지금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정부가 희망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들도 잘못될 수 있다. 이 영화는 권력 부패의 위협을 상기시킨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출에 정치적 의도는 없었다. 언론이 진실을 얻을 수 없으리라고 자만했던 닉슨, 거기에 도전한 쇼프로 진행자 프로스트. 두 특별한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다.”

―인터뷰 중반까지 우위를 점했던 닉슨은 막판에 일정 부분 잘못을 시인한다. 영화는 그것을 ‘승리’처럼 그렸지만 실제 닉슨은 은퇴 후 자서전을 내는 등 안정적인 여생을 누렸다. 인터뷰가 정의를 실현했다고 생각하나.

“(나는) 18세 때 생애 첫 표를 닉슨에게 던졌다. 그가 사임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고 내 선택을 크게 후회했다. 23세 때 프로스트와 닉슨의 인터뷰를 보는 내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궁금하고 답답했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이 들렸다. 유명 정치인이 그렇게까지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것은 처음 봤다. 그건 일종의 정의였다. 그 뒤 닉슨은 정치계에 복귀하려 애썼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회 전체의 책임을 닉슨 한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느낌도 든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했는데, 시선이 더 냉정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닉슨은 자신을 뽑아 준 사람들을 배신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영화를 통해 뭔가 배우거나 깨닫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되길 바란다. 이 영화의 원작은 동명의 연극이다. 내가 그 연극을 봤을 때 느낀 것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연극의 각본가와 배우들을 영화에 그대로 데려와 썼다. 차별성이 없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연극은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인터뷰 기록 자체에 집중한다. 영화는 두 인물 사이의 긴장감 넘치는 대결에 초점을 두려 했다. 정치적인 소재지만 엔터테인먼트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실제 캐릭터의 독특함 덕분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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