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고향 어귀를 지키는 老松처럼 老시인의 곰삭은 지혜 오롯이

  • 입력 2008년 8월 23일 03시 02분


◇ 고향의 소나무/황금찬 지음/149쪽·1만 원·시학

“시인의 의무는 시를 쓰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나이 든 사람이 글을 쓰는 경우가 병적으로 드물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현역 최고령 시인인 황금찬(90) 시인이 서른여섯 번째 시집 ‘고향의 소나무’를 펴냈다. 1947년 월간 ‘새사람’에 시를 발표하며 시작한 창작 활동이 60여 년째. 그동안 시집, 산문집 등 60여 권의 책을 펴냈지만 새 시집을 출간한 소회는 남달랐다.

“남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참 기쁩니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기도 해요.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지난 1년 남짓 써온 시를 실었으며 ‘작은 소망’ ‘물푸레나무’ ‘구름’ ‘사랑하면 닮는다’ ‘한강’ 등 5부로 구성돼 있다. 그의 시집에선 곰삭은 삶의 지혜와 세상을 향한 완숙한 시선이 어우러진다.

‘절망과 희망 그 사이에/강물이 흐르고 있는가/아니다/다만 문이 한 개 달려 있을 뿐이다/그 문 양쪽 벽면엔/거울이 한 개씩 달려 있다//…오늘의 절망과 눈물을 버리자/그리고 꽃구름으로/빛나게 장식된 내일을/불러들이자’ (‘내 고향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겸허한 태도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한 알의 밀이 이 봄날/땅에 묻히다/세월이 흘러간 뒤/백 천 개의 밀을/다시 찾았다//…하나님/이 봄날 제가 한 알의 밀이 되어/여기 묻히게 하여 주십시오’ (‘봄날의 기도’)

그는 “젊었을 때는 정적인 시를 많이 썼다면 나이가 들고 보니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해 주듯이 착하게, 선하게, 남에게 슬픔을 주지 말고 살라는 마음을 담아내는 시를 쓰게 된다”면서 “독자들이 읽고 나면 배울 점이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벼운 운동과 클래식음악 감상 외에는 여전히 시작에 전념하고 있다”며 “자기에게 주어진 본분을 소홀히 하는 시시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하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죽는 날까지 계속 글을 쓰겠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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