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폐교작업장 둘러보시지요”전수천의 정겨운 초대장

  • 입력 2008년 5월 13일 02시 59분


‘생명이 돋아나는 5월…. 전주, 임실에 작업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향 나들이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 전수천(61·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씨는 얼마 전 지인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태어난 곳은 정읍이지만 ‘고향에 돌아오는 마음’을 담아 전북 임실군 옥정 호반의 폐교에 작업장을 마련한 기쁨을 나누기 위한 것. 더불어 완주군의 오스갤러리와 임실군의 오스하우스 등 두 전시공간에서 열리는 작품전을 둘러보자는 정다운 편지였다.

7일 그가 소망한 봄나들이가 이뤄졌다. 열음사 대표 김수경, 신미술관장 나신종, 사진평론가 진동선, 배우 최병학 안석환, 피아니스트 노영심, 여행가 함길수 등 문화계 인사와 지인들이 함께 길을 떠났다. 일행이 탄 버스가 전북 임실군에 접어들면서 옥정호의 푸른 물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자리한 카페 겸 전시장 오스하우스는 7월 7일까지 바코드를 담은 평면작업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는 “어느 공간 속에 존재했던 시간을 철학적 시각에서 포착해 그 시각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임실군 운암면 용운리에 자리잡은 전 교수의 작업장. 원래 분교로 사용했던 건물을 손봐 작업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창밖에는 굽이진 산들이 이어지고, 쟁기로 밭을 가는 풍경이 오롯이 남아 있는 시골마을. 그는 들뜬 표정으로 “앞으로 여기서 작업도 하면서 전주에 있는 예술가들과 문화예술을 이야기하는 담론의 장도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후 7시 오스갤러리로 자리를 옮겼다. 전시장에는 불상을 활용한 설치작업‘Invaluable value’(사진)와 옷 벗은 남녀가 늘어선 ‘욕망의 숲’이 마주 보고 있었다. 인간의 본능적 요소와 정신적 가치를 지닌 불상을 대면시켜 대화하도록 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전시를 본 뒤 종남산을 품에 안은 갤러리 앞뜰에서는 음악과 대화가 이어지는 오프닝 행사가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풍요로운 자연과 더불어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더욱 기쁜 하루였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해 미술계의 별로 떠오른 전 교수. 2005년 미 대륙을 철도로 횡단하는 ‘움직이는 드로잉’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미술의 영역을 확장한 그는 이날 다시 한 번 ‘특별한 드로잉’을 완성했다.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과 더불어 삶의 무늬로 남을 추억을 드로잉한 것이다.

임실=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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