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따라 세계일주]<끝>일본 다카라즈카 뮤지컬 공연

  • 입력 2008년 3월 28일 03시 01분


너무 멋진 남자들… 어머, 女배우네

《공연 따라 세계를 돌고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 일본으로 왔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공연시장이 가장 빨리 성장한 나라이자 현재 최대의 공연 시장이다.

얼마 전까지 일본 공연계의 최대 화제는 아흔 살의 일본 원로 여배우인 모리 미쓰코가 출연하는 연극 ‘호로키’였다.

이 할머니 배우는 나이가 무색하게 이 연극에서 스무 살짜리 젊은 여인의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해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고 했다. 심지어 동네 목욕탕에서 만난 평범한 할머니들도 모두 이 연극 제목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도쿄 공연계는 뮤지컬 시장이 활황이었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를 휩쓸고 있는 히트 뮤지컬 ‘위키드’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일본에서 선보인 이후 연일 매진을 기록 중이었다.

일본 공연계의 큰손인 극단 시키(四季)의 라이선스 뮤지컬 ‘라이온 킹’도 이미 10년째 장기공연 중이었고 시키가 선보인 또 다른 뮤지컬 ‘빨간머리 앤’도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빨간머리 앤’은 엄마와 손잡고 찾아온 어린이 관객들과 학교에서 단체관람 온 청소년 관객으로 낮 공연도 객석이 만원이었다. 주인공인 앤 역은 유명한 아이돌 스타 요시자와 리에가 맡았는데 친근한 외모에 변성기가 갓 지난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앤 역할로는 최고 캐스팅이란 평을 듣는다고 했다. 다만, 앙상블들은 보이지 않을 만큼 스타 캐스팅된 주인공만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 뮤지컬 인기 폭발… ‘위키드’ ‘빨간머리 앤’ 연일 매진 행진

일본의 대표적 전통공연인 가부키 전용극장도 호황이었다. 긴자에 있는 가부키 전용극장은 지방에서 도쿄 구경을 온 노인 관객들로 여전히 객석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만원이었다. 하지만 극 중 한 승려가 “어이쿠! 절에 종(가네)이 떨어졌소∼!” 하자 이를 듣고 있던 다른 승려들이 “돈(가네)이 어디 떨어졌소?”하며 일제히 땅바닥을 살피는 장면(일본말로 돈은 ‘가네’로 종과 발음이 같다)의 옛날식 유머를 보고 나니 앞으로 가부키 공연은 또다시 보진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으로는 단연 다카라즈카가 최고였다. 다카라즈카는 90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가극단을 말하는데, 가부키가 남자배우들로만 구성된 것과 달리 다카라즈카는 오직 여성 배우들로만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문학작품이나 고전을 소재로 했지만 요즘엔 ‘베르사유의 장미’나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을 주로 공연한다.

지난달부터 다카라즈카 도쿄 전용극장에서 선보인 창작 뮤지컬 ‘너를 사랑해’를 보러갔을 때 낮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아줌마 관객들은 남자 주인공(실은 남장한 여배우)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려고 망원경을 이용했다. 다카라즈카의 남자 주인공들은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상상 속의 멋진 남성상을 그대로 그려내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여배우는 웬만한 TV스타 뺨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 직장인-주부관객 위해 공연시간 늦추고 당기고 세심한 배려

그러나 내가 가장 감탄한 것은 관객을 섬세하게 배려한 공연 시간이었다. 다카라즈카는 오사카와 도쿄에 각각 2527석과 2069석 규모의 전용극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두 극장 모두 장기공연에 성공해 늘 객석이 꽉꽉 찬다.

그런데 도쿄 다카라즈카의 저녁 공연은 다른 공연들과 달리 30분 이른 6시 반에 시작한다. 최대한 직장인들과 가까운 긴자에 공연장을 만든 뒤 평일에도 퇴근길에 바로 공연을 보고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도쿄 다카라즈카의 낮 공연은 3시 반인데 오사카 다카라즈카의 낮 공연보다 30분 늦다. 낮 시간의 주 관객은 주부인데 공연을 본 뒤 시장을 보고, 집에 가서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생활 패턴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오사카의 경우 도쿄보다 주부들의 이동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 오사카는 30분 일찍 공연을 시작해 주부들의 귀가시간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는 것이다. 장기공연의 성공을 위해서는 얼마만큼 관객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있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경숙 공연기획자 prniki1220@hotmail.com

▼가쿠노다테 ‘다자와코 예술촌’▼

한국배우 출연 뮤지컬 불새 강렬한 메시지에 가슴 뭉클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한국 최고 인기만화를 뮤지컬로 보고 도자기를 직접 구워본다면 맛이 어떨까.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동북 방향으로 3시간쯤 달려가면 온천관광으로 유명한 아키타 지역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대표적 예술인촌으로 알려져 있는 ‘가쿠노다테’ 마을을 찾아가봤다.

가쿠노다테의 다자와코 예술촌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농촌 같지만, 10여 년 전부터 일본 각지의 많은 예술인이 모여들어 도시민들의 농촌 체험, 문화재 탐방, 수준 높은 공연 관람, 화석 채집, 뜨끈한 천연 온천까지 야외학습의 조건을 골고루 갖춘 일본의 대표적 문화 타운이다. 그래서 이곳은 늘 온천 관광과 문화 공연을 즐기기 위해 찾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일본의 정통 연극과 순수 창작극만을 고수하는 와라비좌극단이 근거지를 두고 있다. 이 극단은 일본의 대표적 만화작가 데즈카 오사무의 ‘불새’를 일본 최초로 뮤지컬로 만든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특히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일본에서 활약 중인 한국 뮤지컬 배우 박동하가 발탁됐고 작품의 연출, 무대, 음악담당에 이르기까지 일본 최고 실력가들이 가세하여 선보이는 작품이라고 했다.

나는 리허설 공연만을 봤는데, 함께 본 일행 중 몇몇은 리허설만 보고도 눈물을 흘릴 만큼 메시지가 강했고, 특히 아름다운 조명과 음악의 여운이 길었다.

예술인촌에는 ‘불새’가 공연되는 710석 규모의 와라비좌대극장 이외에도 창작 연극을 주로 소개하는 작은 소극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적 기능과 야외학습의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좋은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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