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충격-엉뚱-엽기… 4차원 패션 몰려온다

  • 입력 2008년 3월 21일 02시 58분


《“에펠탑을 들고 다닌다고?” ‘미드(미국드라마)’ 열풍을 몰고 온 미국 케이블채널 HBO의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 5월 영화로 나올 예정인 이 작품의 첫 장면이 공개되자마자 인터넷에는 ‘4차원 에펠탑 백’이 화제의 검색어로 떠올랐다. 이는 주인공인 세라 제시카 파커(캐리 브래드쇼 역)가 손에 든 파리 에펠탑 모양의 손가방으로 ‘티미 우드’사의 ‘에펠타워 백’이었다. 비범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하려는 여성들의 문의가 끊이질 않자 지난 달 말 인터넷 쇼핑몰 ‘옥션’의 해외구매대행사이트 ‘191’에서 이 가방을 팔기 시작했다. 최고 100만 원까지 하는 이 상품은 한 달도 채 안 돼 예약 주문만 50건이나 됐다. 패션은 도전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생뚱맞고, 황당무계하고, 엽기적인 패션이 인기를 얻기도 한다. 패션쇼에서나 존재할 법한 4차원 패션이 벽장을 뚫고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자칭 4차원 패션의 전문가라 불리는 ‘사차원’ 씨에게 급수별 ‘4차원’ 패션코드를 들어 봤다.》

일탈정도를 급수별로 알아본다면…

○초급… 리믹스 패션

4차원 패션의 시작은 일단 ‘튀는 것’부터죠.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 조합으로 또는 정형화된 디자인을 살짝 비튼 방식으로…. 최근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정형화’의 상징으로 꼽히던 남성 정장의 변화입니다.

올봄 ‘캘빈클라인 컬렉션’의 남성 정장은 일명 ‘점퍼슈트’로 스포티한 점퍼스타일을 정장과 섞은 형태죠. 넥타이 위로 가림막이 달려 있거나 재킷에 단추가 아닌 지퍼로 잠그는 등 20, 30대 남성들을 겨냥해 최대한 가볍고 활동적인 느낌을 담았답니다. ‘솔리드옴므’는 차이나 재킷과 반바지를 결합시킨 정장, 일명 ‘건빵 주머니’라 불리는 큰 주머니를 달아 만든 ‘주머니 정장’을 선보이기도 했죠.

여성의 4차원 패션 초급과정은 ‘무채색 상의+컬러 하의’ 공식을 따릅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4인조 여성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의 패션이 대표적인 초급 4차원 단계죠. 미니원피스 등 상의는 최대한 어둡게, 반대로 스타킹은 컬러스타킹을 신어 마치 하체만 발달한 것 같은 느낌을 주죠.

○중급… 자아 상실

살짝만 바꾼 것이 ‘초급’이라면 4차원 패션 ‘중급’은 자아를 잊는 것이 핵심입니다. 최근 인터넷 쇼핑몰 ‘G마켓’에서 인기인 ‘엽기 후드 집업 카디건’은 머리 끝부분까지 지퍼를 올릴 수 있도록 만든 카디건으로 얼굴 전부를 가릴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패션사업팀 박기웅 실장은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의 취향을 반영한 상품”이라고 말했습니다. 캐주얼 의상뿐만이 아닙니다.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를 주제로 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브랜드는 외화 ‘스타트렉’의 여주인공과도 같은 우주복 상의에 넝마처럼 찢어진 핫팬츠를 선보여 ‘섹시한 우주인’을 형상화했죠. 이를 더욱 극대화시킨 것은 일본 브랜드 ‘이세이미야케’의 미니원피스로 흰 원피스와 함께 선풍기 커버 같은 비닐을 머리에 쓰며 자신을 은폐하기에 이르렀죠.

○고급… 4차원 자아로 재탄생

리믹스 패션도, 자아 상실도 성에 차지 않는다면 4차원 전문 디자이너들을 소개해 드리죠.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입는 의상이 아닌, 디자이너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패션쇼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고급 주문복)’ 컬렉션을 통해 4차원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초상화 ‘마담 X’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올해 봄 여름 그의 의상들은 양동이, 바구니 등을 우아한 ‘볼륨 드레스’와 함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죠. 영국의 신예 4차원 디자이너로 꼽히는 가레스 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런던 패션위크’에서 그는 무채색을 이용해 ‘초현실주의’ 패션을 선보였습니다. 중세시대 갑옷부터 마녀, 병사 복장 등 무시무시한 화장과 의상들을 통해 유일무이한 4차원 세계를 만들었죠.

○결론… 일탈의 즐거움

패션관계자들도 따라 하기 힘든 4차원 패션. 그 인기는 사회, 문화적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전문가들은 독특한 인물이나 드라마 등 대중문화에만 국한됐던 4차원 문화가 사회구성원들에게 보편성을 얻으며 확장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여기에는 엉뚱하고 황당무계한 것을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한다. 이를 증폭시키는 곳은 인터넷으로 ‘4차원’을 전면에 내세운 패션몰을 비롯해 ‘건달’ 옷만 전문적으로 판다는 ‘건달 숍’까지 나타났다. ‘옥션’이나 ‘G마켓’ 같은 인터넷 쇼핑몰에는 ‘4차원’, ‘엽기’ 등의 카테고리가 생기기도 했다. 패션 광고 역시 4차원적인 엉뚱함을 삽입하는 것이 대박의 조건처럼 여겨지고 있다. 제일모직의 새 캐주얼브랜드 ‘컨플릭티드텐던시’ 광고는 모델이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채 생뚱맞게 서 있는 것이 주 내용이다.

4차원 패션의 핵심은 즐거움이다. 패션컨설팅회사 ‘인터패션플래닝’의 한선희 부장은 “디자이너는 매너리즘을 벗어나기 위해 생뚱맞은 패션을 만들고 대중은 이를 ‘시도’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4차원 패션이 얼마나 지속적일지는 의문이다.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유행이 되는 순간 4차원 패션이 아닌 것이 되기에 사람들은 늘 엉뚱한 것에 목말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사진 제공 캘빈클라인, 발렌시아가,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G마켓, 크리스찬 디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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