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14>세계화의 덫

  • 입력 2008년 1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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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식 문명화 프로젝트를 범지구적으로 팔아먹고 다니는 자들은 대개 스스로 계약을 위반하기 일쑤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고향인 미국이나 유럽에서조차 그런 발전 모델이 별로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불안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추천

시장중심 세계관 보완필요성 깨닫게 해

“세계화는 이제 불가피하다. 하지만 분명 세계화는 어두운 측면을 가지고 있다. 세계화의 부정적 충격들이 존재하는 한 이를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방안이 필요하다. ‘세계화의 덫’은 그와 관련된 지식을 주는 책이다. 대통령 당선인의 시장 중심적 세계관에 좋은 보완이 될 것이다.”(송호근 교수)

이제 ‘세계화’란 식상한 말이다. ‘정보화’만큼이나 뻔한 소리가 됐다. 찬성한다고 순식간에 세계인이 되거나, 반대한다고 거스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세계화는 여전히 시대의 화두다. 1990년대 초부터 거론됐는데 수그러들 기세도 아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아직도 한국이 적절한 세계화 정책을 수립하지 못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무작정 밀어붙인 세계화가 가져올 피해 때문이다.

‘세계화의 덫’은 그 피해에 초점을 맞췄다. 세계화 물결은 지구촌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동시에 경쟁의 이름으로 찢어놓았다. 그 틈새로 밀려든 비참한 삶의 운명. ‘승리자의 환호에 취해 패배자의 아픔을 돌보지 않은 건 아닌지’를 돌아본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출신인 2명의 저자가 쏟아 붓는 세계화의 맹점은 여지없다. 서구 논리에 휘말린 세계화는 지구를 ‘20 대 80의 사회’로 재편한다고 봤다. 극단적으로 ‘20%는 유복해지고 80%는 불행해지는 5분의 1을 위한 사회’다.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해 전체 민주주의 자체를 공격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저자에게 ‘5분의 1 사회’에서 생성된 경쟁은 이제 모든 활동의 중심을 의미한다. 일자리 보전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른바 ‘시장의 정글’이 도래한다. “몰락하는 중산층은 우익 선동가의 그늘 뒤로 몸을 숨기고 노동자는 ‘가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서리친다.”

결국 세계화는 서구 자본이 가져온 환상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벌어질 타격은 심각하다. 삶의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다. 현대인은 인생의 질을 향상시키려 일하는 게 아니라 경쟁력 있게 일하려고 삶을 희생시킨다. 이 같은 무한 경쟁의 반복은 ‘기업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마저 뒤바꾼다. 기업 경쟁력과 이윤증대를 위해 사회와 생태계가 건강성을 잃게 된다고 ‘세계화의 덫’은 내다봤다.

이 책은 너무 극단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책이 출간된 1997년은 한국이 그랬듯 세계화가 초래한 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당시 세계화가 한 쪽으로 몰렸듯 저자들의 시각도 반대로 치우친다. 게다가 저자들이 내세운 ‘20 대 80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10가지 아이디어’도 서구적인-특히 유럽 중심적인-시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지닌 미덕 자체를 폄훼할 필요는 없다. 역사는 언제나 한 방향으로 가는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의 덫’은 여전히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를 담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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