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웃사촌 ‘다문화 가정’]<下>이주여성 지원정책 문제없나

  • 입력 2008년 1월 16일 02시 58분


코멘트
2000년대 중반 이후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정부지원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프로그램이 이주여성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거나 문화 간 상호 이해를 넓히는 데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주여성들이 한국어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해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한국디지털대
2000년대 중반 이후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정부지원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프로그램이 이주여성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거나 문화 간 상호 이해를 넓히는 데는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주여성들이 한국어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해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한국디지털대
《한국에 온 지 7년 된 베트남 여성 쑤언(28·전북 진안군) 씨의 최대 관심사는 취업이다. 그러나 어디에 일자리가 있는지,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알 길이 없다. 그가 사는 지역의 지원단체들은 한국어교실에만 치중할 뿐 취업 정보나 기술 교육은 제공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이주여성을 빨리 정착시키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저처럼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면 어디서 기술을 배울 수 있는지, 어떤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등 궁금한 것이 많은데 마땅히 도움을 받을 만한 곳이 없어요.”》

○ 조기 적응 지원에 초점

정부의 이주여성 지원은 1990년대 말 여성 이주노동자와 성매매 외국인 여성을 돕는 데서 출발했다가 2000년대 중반 결혼이주여성으로 정책 대상을 전환했다.

2006년 여성가족부, 교육인적자원부, 노동부 등 14개 중앙 부처가 종합적으로 내놓은 ‘결혼이민자 가족 사회통합 지원방안’은 △이주여성 조기 정착 지원 △아동 학교생활 적응 지원 △생활안정 지원 △탈법적 국제결혼 중개 방지 △가정폭력 피해자 체류 지원 △사회적 인식 개선 △업무추진체계 구축 등 7개 분야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정부가 가장 관심을 쏟는 분야는 한국어 교육, 요리 강습 등 이주여성이 빨리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2006년 여성개발원이 822개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이 운영하는 이주여성 지원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한국어 교육이 608개(74%)로 가장 많았다. 요리강습(44.6%), 전통문화 체험(34.7%), 예절 교육(24.0%)이 뒤를 이었다. 반면 취업 교육, 법률 지원, 의료 상담은 각각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김이선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이주여성 대책은 불균형 상태에 있다”면서 “이주여성이 빨리 한국문화를 익힐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은 공급 과잉인 반면 어느 정도 한국 생활에 익숙해진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인권을 보호하는 프로그램은 태부족”이라고 지적했다.

○ 외국어 서비스 강화해야

2년 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김레나(24·충북 단양군) 씨는 자신이 기초생활보장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이주여성이라도 한국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고 있으면 생계·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2006년 3월 관련법이 개정됐다는 사실을 동향 친구가 알려준 것이다. 그가 사는 지역에 있는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에는 우즈베크어를 할 줄 아는 상담원이 없다.

지난해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이주여성들이 지원사업에 대해 알게 되는 경로는 동향 친구가 가장 많다. 다음으로는 시민단체에서 자국어 소통이 가능한 상담원에게서 전해 듣는 경우다.

여성가족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전국 21개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중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를 제외한 다른 국가 언어를 구사하는 상담인력이 있는 곳은 40%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

○ 문화 교류로 이어져야

대다수 이주여성의 생활 반경은 가정에 머무르기 때문에 한국 사회와의 교류가 제한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친교 네트워크를 넓혀 나갈 수 있도록 여성 후견인과 자매결연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부 지자체는 ‘친정어머니’ ‘언니’의 역할을 하는 한국 여성을 모집해 이주여성과 월 1회 이상 교류하는 ‘멘터링’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멘터링에 대한 교육이 부족해 형식적인 결연에 그치고 있으며 이주여성에 대한 한국 여성의 일방적인 후원을 강조하고 있는 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강원대 김민정(문화인류학) 교수는 “이주여성 대책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한국인과 이주여성 간에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면서 “이주여성이 출신 국가의 요리, 공예품 등을 전시할 수 있는 지역행사를 자주 마련하는 등 기초적인 수준의 문화교류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日, 지방 행정에 참여 기회 제공▼

■ 외국의 이주여성 정책은

우리나라보다 한발 먼저 결혼이주여성 증가를 경험한 국가들은 이주여성의 적응을 돕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적극적인 이주여성 정책을 펴는 국가로는 호주 캐나다 네덜란드 스웨덴 일본 독일 등이 꼽힌다. 대부분 최근 수년 사이 이주민 인구가 급증한 국가다.

이주여성 증가 패턴이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도 1980년대 초 농촌 남성의 결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외국인 여성 이주가 본격화됐다. 2006년 말 현재 일본인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은 3만여 명으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한 외국인 남성 8000여 명보다 4배 가까이 많다.

이주여성 출신 국가는 중국이 1만 명으로 가장 많고 필리핀 한국 태국 몽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뒤를 잇고 있다.

이주여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정책적 대응을 하지 않던 일본은 2005년 범정부 차원의 ‘다문화공생추진플랜’을 내놓으며 이주여성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다문화공생추진플랜은 이주여성이 지방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주여성이 많이 사는 가나가와(神奈川) 현의 경우 ‘외국 국적 현민 가나가와 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1년 이상 거주한 이주여성 중 20여 명을 선출해 외국인 시민과 관련된 정책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주여성 대책이 가장 활발한 국가로는 호주와 캐나다가 꼽힌다. 이들 국가는 이주여성을 사회에 적응시키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이들이 출신 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주로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전개하는 것과는 달리 캐나다 호주에는 대도시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대도시 지역에 이주여성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이주여성이 많은 캐나다 밴쿠버 지역에서 운영되는 ‘다리 놓기 프로그램(Building Bridge Program)’은 경영 리더십 교육을 제공한다. 이주여성들이 창업을 하거나 스스로 이주민 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 주기 위한 것이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