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562년 임꺽정 처형

  • 입력 2008년 1월 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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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들은 이미 들끓고 있었다. 임꺽정이 살았던 조선 명종 때는 ‘민란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농민들의 봉기도 많았다. 정치 기강의 문란으로 마을 수령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가 극성을 부렸기 때문이다.

임꺽정은 1559∼1562년 단 4년의 활약으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나라의 안위를 위협할 만큼 큰 도적이 되자 실록에 임꺽정이 등장한 것이다. 명종실록에서 임꺽정은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임금까지 그 존재를 걱정했던 ‘반국대적(叛國大賊)’ ‘광적(광賊)’이었다.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를 살해하고 옥에 갇힌 죄인을 풀어준 것은 지배층의 시각에서는 체제를 위협하는 신호였다.

그러나 임꺽정은 백성들로부터는 ‘의적(義賊)’의 칭호를 받았다. 서울로 가는 봉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 준 얘기가 무수히 전해진다.

지배계층을 골탕 먹이는 그의 활약은 백성들에게는 ‘삶의 청량제’였을 것이다. 지략이 뛰어나 신발을 거꾸로 신고 도망가 관군들을 따돌렸고, 어떤 때는 장사꾼으로 변장해 개성 한복판에서 장사를 했다.

백성의 지지 덕분인지 임꺽정은 조정이 총력을 기울여 붙잡으려 했지만 3년이나 버텼다.

그러나 임꺽정 역시 도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리는 대목이 실록에는 종종 등장한다. 약탈을 하면서 무고한 양민을 살해하고, 관가에 고발을 한 자를 찾아내 무자비하게 죽이는 방식으로 복수를 했다.

임꺽정은 1561년 부하를 이끌고 황해도 구월산에 들어갔다가 관군의 습격으로 부상을 입고 붙잡혀 1562년 1월 3일 처형됐다.

임꺽정은 동아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낸 벽초 홍명희에 의해 1928년 ‘소설 임꺽정’으로 되살아난다. 조선시대 하층민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해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그 덕분에 임꺽정은 지금 우리 곁에 있다.

‘시대가 도적을 만든다’는 말은 위정자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한 사관은 임꺽정의 반란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재상이 멋대로 욕심을 채우고, 수령이 백성을 학대하며 살을 깎고 뼈를 발리면 고혈이 다 말라버린다. (중략) 아침, 저녁거리가 없어서 잠시라도 목숨을 잇고자 해서 도둑이 되었다. 그들이 도둑이 된 것은 왕정의 잘못이지 그들의 죄가 아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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