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프루스트의 상상력, 과학을 압도하다

  • 입력 2007년 12월 2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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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조나 레러 지음·최애리 외 옮김/384쪽·1만8000원·지호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다르다.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시와 수학, 문학과 과학, 예술과 기술의 이분법은 그래서 당연시된다.

교육과정에 따라 청소년들은 고등학교 때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고 이에 따라 대학 전공을 택한다. 철학을 배우는 학생은 양자역학을 공부할 일이 거의 없고 공대 학생은 문학 작품을 읽을 일이 드물다. 과학자들에게서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대하기 힘들고 인문학자들에게서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를 발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책은 문학과 예술이 발견한 진실을 후대의 신경 과학이 확인한 얘기를 들려주며 인문학과 과학의 상호소통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책엔 8명의 작가 화가 작곡가 요리사가 등장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월트 휘트먼, 조지 엘리엇, 폴 세잔 등 누구나 이름은 들어 봤을 법한 인물들. 이들은 특유의 상상력과 직관으로 당대가 이해하지 못한 인간 뇌의 비밀을 작품으로 드러냈다.

신경과학 실험실에서 일하던 저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심취하고 프루스트가 이미 신경과학이 실험으로 밝혀낸 기억의 비밀을 찾아낸 것을 발견한다.

“과자 부스러기와 섞인 그 따뜻한 액체가 내 입 안을 건드리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스쳤으며 나는 멈칫한 채 내게 일어나고 있는 그 놀라운 일에 정신을 집중했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프루스트가 마들렌 한 조각을 먹었을 때, 그는 두뇌의 기억 과정이 품은 진실을 직관적으로 알아챘다. 그는 “맛과 냄새만이 연약하지만 끈질기게 실체가 없으면서도 오랫동안 남아 떠돈다”고 말했다. 오늘날 신경과학은 프루스트가 옳았다는 것을 안다. 심리학자들은 후각과 미각이 뇌의 장기 기억센터인 해마 조직과 직접 연관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프루스트는 기억은 가짜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회상하는 사물에 대한 묘사를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쳐 썼다. 화자의 연인 알베르틴의 애교점은 턱에 있다가 입술로, 입술에서 눈 아래 광대뼈로 옮아간다. 착오일까? 아니다. 작가는 기억의 부정확성과 불안정함을 표현한 것이다. 현대 신경과학은 실험을 통해 기억할 때마다 뉴런 구조가 미묘하게 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기억이 고정된 정보 창고가 아니라 기억할 때마다 변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몸과 정신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감정이 육체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시로 표현한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 우리 시각이 카메라처럼 모든 것을 담지 않고 윤곽이나 선의 각도 같은 필수요소만 인식한다는 점을 그림으로 묘사한 폴 세잔 등을 차례로 소개한다.

놀라운 점은 저자가 26세란 사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문학과 신학을 전공했다. 2000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에릭 캔들의 실험실에서 연구했다. 또 뉴욕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보스턴 글로브’ ‘네이처’ 등에 과학 관련 글을 기고한다. 이 책은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탄생했을 것이다.

인문계와 자연계 중 한쪽 길을 선택해 다른 한쪽과 결별한 채 살아가는 26세의 한국 젊은이가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딸 에이더 러블레이스처럼 수학도 시도 궁극적으로 사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고 수학을 계속 공부하다 보면 시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날이 올까.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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